[이상미의 예술과 도시] 3. 폼페이 멸망과 역사의 아이러니

입력 2024-02-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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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포럼 대표ㆍ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소장

화산재가 지킨 헬레니즘문화 정수
연 400만 방문 관광도시로 재탄생

도시 5분의4 발굴…학계에 큰영향
한·伊 수교 140주년…폼페이유물전

최근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맞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소장전이 서울에서 진행 중이다. 세계적 박물관 중 하나인 나폴리 박물관이 소장한 폼페이의 조각상, 프레스코화와 장신구 등 다양한 유물 127점이 전시되어 있다.

폼페이는 사실 고대 로마의 역사를 간직한 채 ‘멸망한 도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온화한 기후와 비옥한 평야 덕분에 농업과 상업이 발달한 로마 귀족들의 휴양지로 각광받던 대표 도시였다. 기원전 89년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간 이후 철저하게 로마화가 진행된 도시로, 로마의 특권층 사람들의 호화 별장을 건설했던 휴양지였는데, 그 당시 인구는 최대 5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로마귀족 휴양지… 순식간에 잿더미

AD 79년 8월 24일 오후 1시, 폼페이는 나폴리 연안에 위치한 해발 1300m 규모의 베수비오산의 화산 폭발로 단 18시간 만에 전 도시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1000년 가까이 화산활동이 없었던 이 곳은 불의 신 불카누스를 기념하는 축제일에 돌연 폭발했다.

추후 발표된 이탈리아·영국 간 공동 연구진 발표에 따르면 화산 폭발 당시 초고온의 화산재와 유독가스 등이 약 15분간 분출됐다고 한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이 폭발로 폼페이의 모든 거주민이 숨진 것은 아니나 제때 도망치지 못한 약 2000명의 거주민이 고온가스와 열구름에 질식하거나 뜨거운 열에 의해 목숨을 잃고 도시와 함께 사라졌다.

폼페이의 멸망은 타락한 도시가 신의 벌을 받은 것이라고 화자되기도 하면서, 로마의 화려한 문화를 자랑하던 광장과 대규모의 호화스러운 건물, 극장, 상가는 물론 당시 최고의 설비를 자랑하던 스타비안 목욕탕까지도 이 화산재에 온전히 묻혔고 그렇게 약 1000여 년의 시간동안 사람들 기억속에서 잊혀졌다.

삽시간에 사라진 폼페이가 역사에 다시 등장한것은 1592년으로, 폼페이를 가로지르는 운하를 공사하면서 건물과 회화작품들이 발견되어 폼페이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그후 1748년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독점사업으로 폼페이에 대한 발굴을 시작했다.

이때에서야 발굴이 본격화되었으나 프랑스인들은 보존 상태가 좋고 외관이 아름다운 출토품만 선택적으로 발굴하여 거의 약탈에 가까웠다는 평들이 있다.

나머지 유물들은 그냥 버려지기 십상이었고 폼페이 양식을 보여주는 모자이크나 벽화 같은 미술품들은 프랑스 왕궁으로 실려가기 바빴다. 그러나 프랑스의 발굴 당시 광장, 목욕탕, 원형극장 및 약국 등의 유적이 발견되어 폼페이의 당시 도시를 연구하는 데 기틀을 마련하였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를 필두로 조직적인 발굴이 개시되었다. 유적지 구획정리 및 수리와 보존이 병행하며 체계적으로 문화재를 발굴하였는데, 그 당시로선 과학 기술까지 동원하여,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 넣어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시체가 된 폼페이 사람들의 ‘인간 석고상’은 고고학계는 물론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순식간에 굳어진 폼페이 사람들의 시신 중에서도, 뱃속에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엎드려 있는 임산부,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개의 형상들은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로 인한 당대 사람들은 물론 동물들의 두려움까지 온전히 느껴져 보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세계유산 지정 뒤 방문객 급증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갑작스레 너무 많은 방문객으로 유적지 중 하나인 ‘검투사의 집’, ‘도덕주의자의 집’등이 무너지는 악재를 겪으며 ‘위기 유산’으로 지정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폭우로 비너스 신전의 석조 구조물 일부와 포르타 노체라 공동묘지 무덤 돌벽이 무너지기도 했다. 너무 많은 방문 인파로 인한 붕괴 및 훼손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손상된 폼페이 건축물을 1940년대에 졸속으로 복구한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유적에 대한 이탈리아 정부의 부실관리가 국제 사회의 우려를 증폭시킨 사건들이었다.

그 후 이탈리아는 유럽연합과 ‘폼페이 복원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였는데, 신전, 간이식당, 사륜마차 등도 추가로 발견돼 고대 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무엇보다 2020년 10월에는 나폴리 페데리코 제2대학의 피에르 파올로 페트로네 연구진이 두개골에 온전한 모습으로 간직된 뇌세포를 발견하여 고대 인류 연구에 대한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등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폼페이 발굴은 계속되어 현재는 도시의 약 5분의 4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이다. 이곳의 많은 출토품들은 현재 나폴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연간 1억4000만 달러 관광수입

모든 문화재는 기억과 보살핌이 필요하다. 제대로 보살피지 않으면 형체가 사라지고 기록속에서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 형체가 없는 기록으로서의 문화재는 그 가치도 작을 수밖에 없다. 화산폭발로 인해 화산재가 문화재의 훼손을 막아줘서 어느 고대 도시보다 완전한 형태로 발굴된 폼페이는 헬레니즘 문화의 극치를 고스란히 전달하면서 매년 4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명소로 연간 1억4000만 달러 이상의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문화재 복원 및 관리는 그 자체로서 관광산업에 큰 몫을 차지하면서 동시에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도 한다. 한국의 복원이 간혹 보수의 개념으로 단편적이게 접근되어 아쉬움이 큰 데 비해, 오랜 기간을 두고 섬세한 유적 복원을 진행하는 이탈리아 폼페이 관리운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백남준포럼 대표

유럽문화예술콘텐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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