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빈 둥지

입력 2024-01-2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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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집을 나갔다. 올해 스무 살. 대학 입학을 앞두고 기숙사에서 2주간 오리엔테이션을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 맞추어 정신없이 짐을 싸는 것을 도와 주고, 휴일날 진료하는 병원에 들려 ‘입소용 결핵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차를 몰고 가며 이런 저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기숙사에 도착했다. 4시까지 입소해야 하는데, 거의 시간을 맞추어 간신히 지각을 면했다. 서둘러 등록을 하고,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아들은 뒤도 안돌아 보고 바삐 들어갔다.

순간 세상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하늘색이 더 흐려졌고, 세상은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회색빛으로 변했다. 캠퍼스엔 이파리 하나 없는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 왔다.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와 동고동락했던 20년 정도의 길다면 긴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빠의 껌딱지였던 연약하고 부족하기만 하던 유아기, 공부에 지치고 힘들어하던 청소년기, 때론 번민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잠시 밝게 웃던 고 3시기, 아직 내 눈엔 미숙하게만 보이는 그가 어느덧 집을 떠났다. 어느날 갑자기.

나는 직업상 수많은 인생을 지근거리에서 간접체험하면서 살아 왔다. 그래서, 지금 내가 겪는 허전함과 외로움도 환자들의 체험을 통해서 자주 접하였었다.

그럴 때, 많은 치료 기법들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지만, 내가 그들이 겪은 상황을 직접 겪은 경우-실연, 재수생활, 가족상 등-에 진정으로 공감이 이루어지며 환자와 하나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또 하나의 상황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식의 성장, 떠나감이라는…. 정신과적 용어로는 ‘빈둥지증후군’이라고 하는 것을.

물론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다시 삶은 계속되고 어떻게든 마음을 추슬러 살아 가게 되겠지. 그러면서, 인생의 4계절을 모두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환자와의 면담에서 더욱 더 다양한 삶의 상황들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터이고…. 차 유리에 어느덧 빗방울이 듣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린다. 나는 서두를 것 없다는 마음으로, 평소보다 편안하게 귀갓길의 정체 속에 몸을 맡겼다.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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