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이창용 화법’, 풍랑 속 나침반 되길

입력 2024-01-11 09:16 수정 2024-01-1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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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위트를 예상치 못한 순간에 접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올해 신년사가 그렇다. 이 총재의 2024년 신년사를 보면 첫 페이지 각주에 ‘신년사 작성과 관련해 도움을 준 통화정책국 정책협력팀의 김병국 팀장, 배문선 차장, 김영래 과장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문장이 있다.

기관장의 각종 발언문에는 ‘스피치 라이터’가 참여한다. 그간 숱하게 접했던 기관장, CEO의 신년사, 발언문 등을 다시 되뇌었을 때 도움을 준 직원에게 고맙다고 첨언한 경우는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필자의 경험에 한정한 기억이다. 이를 두고 금융당국 출신 임원은 “보통 남이 써 준 글을 읽는데, 이 총재는 본인이 직접 썼기 때문에 ‘직원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 총재의 위트를 경험한 이는 그의 순발력에 감탄한다. 2022년 8월에 열렸던 잭슨홀 미팅에서의 일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통화 완화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을 때다. 당시 구로다 총재가 발언한 시간은 잭슨홀 주제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청중과의 질의응답 순서였다고 한다. 청중과의 질의응답을 준비하려고 했던 현장 참가자들은 구로다 총재의 갑작스러운 통화 완화정책 기조 발언에 당황했고, 현장에는 정적이 감돌았다는 전언이다. 그때 이 총재가 마이크를 잡아 “구로다 총재는 존경받는 멘토이자 내게 오랫동안 조언을 해주는 인물이었지만 최근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청중들은 적막을 깨고 웃음을 터뜨렸다. 한 국가의 중앙은행 총재는 멋쩍어지지 않았고, 순간적으로 자국의 경제상황을 떠올렸을 수많은 중앙은행 총재, 전문가들의 긴장감을 누그러트리는 한마디였다.

이 총재가 한국은행 수장으로 부임한 이후 그를 향한 시장의 평가는 후하다. 어느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이창용이란 분이 현재 중앙은행 총재를 맡은 것은 정말 축복받은 것”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이 총재가 한은 총재로 부임한 이후 한은이 많이 바뀌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역대 한은 총재들이 들으면 섭섭할 수 있는 얘기도 오간다. 평소 말을 아끼는 것으로 알려진 관료 출신도 “역대 한은 총재 중에서 가장 훌륭한 분이 아닌가 싶다”라고 얘기할 정도다.

2024년 한국 경제는 사방에서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는 고무줄을 연상케 한다. 어느 한쪽이 끈을 갑자기 놓아버리거나, 끈을 끊어버리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극도로 마음을 졸이고 있는 상황에서 찰나의 순간이라도 쉼을 가질 수 있고 동시에 채찍질로 환기를 시킬 수 있는 말 한마디가 필요할 때다.

지난해 이 총재는 “경고하겠다(2023년 10월,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 ‘영끌족’을 향해)”, “공짜는 없다(2023년 12월, 정부 물가관리와 관련해)” 등 ‘이창용식 화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11일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한 명이 빠진 6인 체제에서 이 총재는 의사봉을 두드린다. 이날은 태영건설 워크아웃에 대한 제1차 채권자협의회 개최날이기도 하다.

새해 벽두부터 경제, 정치, 사회 곳곳이 살얼음판이다. 이 총재의 신년사를 되짚어 봤다. “때로 예기치 않은 풍랑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중략) 보다 긴 안목과 통찰력을 가지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든든한 나침반이 되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창용식 화법으로 통하는 그의 ‘위트’ 한마디가 경제 풍랑 속에서 나침반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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