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심화수학 배제, 또 쉬운 답 찾다 오답 낸 것 아닌가

입력 2023-12-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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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어제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선택과목을 없애는 ‘2028학년도 대학입시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통합형 수능이다. ‘심화수학’(미적분Ⅱ·기하)은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고교 내신의 경우 예체능과 과학탐구실험, 사회·과학 융합선택과목을 제외하고 현행 9등급 상대평가가 ‘5등급 상대평가’ 체제로 바뀐다.

통합형 수능 도입과 내신 등급 조정 모두 사교육 경감 대책으로 채택됐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동안 너무 힘든 영역을 모든 아이에게 공부하게 하는 것이 불필요한 사교육을 많이 유발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선택과목을 없애는 것은 지난 30년간 계속된 과목별 유불리 논란을 털어내기 위해서다. 과격한 감이 있지만, 이해나 동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선택과목은 이과생의 문과 침공 현상을 부추겼다. 2022학년도 수능의 수학 미적분에서 높은 표준점수를 받은 학생들이 인문계열로 교차 지원하는 일이 허다했다. 진로나 적성과 무관하게 대학 브랜드를 보고 지원했다가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의 중도탈락도 늘고 있다. 서울대·고려대·연세대의 지난해 중도탈락자는 5년 내 최고 수준이란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심화수학 배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앞으로 수험생들은 문과 수학으로 통하는 대수, 미적분Ⅰ, 확률과 통계만 공부하면 된다. 문제는 이공계열에서 필수적인 미적분Ⅱ, 벡터 등에 대한 기초지식 없이 대학 문을 밟게 된다는 점이다. 이공계열 수업을 현행 고교 수준으로 낮춰도 좋다는 것인가.

이공계는 현행 입시제도하에서도 다수 신입생의 기초학력 부실로 진통을 겪고 있다. 서울대 이공계의 경우 올해 신입생의 42%가 자체 시험에서 학력 미달 평가를 받았다. 다른 대학들은 어떻겠나. 대학 수업을 따라갈 능력이 안 되는 신입생들을 대량으로 쏟아내는 부조리한 수능 제도가 개선은커녕 개악될 판국이니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사교육비 부담을 낮추려는 것은 옳은 정책 방향이다. 그러나 입시의 기본 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입시는 경쟁이다. 경쟁에서는 변별력이 불가결하다. 심화수학을 배제한다고 해서 반드시 사교육비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장담할 일도 아니다.

대학은 대학대로,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입시생들은 입시생들대로 새로운 변별력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수능만 봐도 공통수학에서 고난도 문제가 나올 수 있다. 국어, 과학 등 다른 과목의 난도가 높아질 공산도 없지 않다. 논술, 면접 등 대학별 고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다 사교육을 자극할 악재들이다.

사교육 과열을 막는 정공법은 공교육 정상화다. 근본적 성찰 없이 갈지자 행보로 백년대계에 임해선 안 된다. 역대 교육 당국은 언제나 쉬운 길만 찾다 거꾸로 혼란과 불안만 키우기 일쑤였다. 이번에는 다른가. 대학이 무엇인지, 그 경쟁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부터 숙고해야 한다. 생각할 것은 안 하고 손대기 쉽다고 입시제도만 흔들어대니 사교육 시장만 팽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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