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상담소] 혹시, 라는 말이 품은 힘

입력 2023-12-2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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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는 말에는 객관적인 정보와 함께 그 말을 쓰는 사람이 품은 태도나 관점이 포함돼 있다. 예를 하나만 들어 보자. ‘물이 반이나 차 있네’와 ‘물이 반 밖에 안 차 있네’를 비교한다. 첫 번째 문장을 말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물을 낙관적으로 바라본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두 번째 문장을 말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비관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다.

“혹시, 남자친구랑 무슨 일 있어요?”

“그런데 혹시, 제가 도와 줄 수 있을까 싶어서요.”

이상은 어느 드라마에서 가져온 대사다. 시골 마을에 사는 여자 주인공 A가 동네 어귀에서 우는데, 동네 통장 아주머니가 다가선다. 통장 아주머니는 A가, 마음 문을 열어주지 않는 남자 친구 때문에 운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A에게 듣고 싶다. 어릴 때부터 봐서 남자 친구를 잘 아니까 설명해 주고 싶다. 하지만 억지로 대화를 끌어내고 싶진 않다.

통장 아주머니가 품은 의도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설명’, 그리고 ‘설득’이다. 이 말은 통장 아주머니가 해당 문제 상황에 대해서 비교적 뚜렷하게 생각 혹은 의견을 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통장 아주머니는 자신이 생각한 바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고, 대화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한다. 이런 태도가 언어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치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부부가 싸우는 이유는 언어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부부는 언어에 실은 태도, 관점 때문에 싸운다. 내가 옳다는 생각, 상대방은 틀렸다는 태도가 목소리 크기나 사용 방식에 실리면, 똑같은 말이라도 대단히 기분 나쁘게 들린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공격받으면 반격을 하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고 커지게 된다.

필자는 지난 1년 동안 가족상담자로서 독자 제위에게 다양한 상담 이야기를 소개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글을 통해서 독자께서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고급 언어 기술을 하나 알려 드리겠다. 대화 중에 공손한 태도로 슬며시 ‘혹시’라는 단어를 섞어 보시라. 그러면 나와 대립하는 상대를 단박에 설득하지는 못해도, 대화 분위기를 꽤 우호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재원 강점관점실천연구소장·임상사회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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