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상담소] 무해한 것들은 소중하다

입력 2023-11-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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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남 행복한 죽음 웰다잉연구소 소장

얼마 전 조카를 만났다. 중학교 2학년인 조카의 책상에 둘둘 말린 실뭉치가 있었다. 조카에게 물었더니 일회용 마스크에 달린 끈을 모았다고 한다. 마스크를 버릴 때마다 아까워 따로 모았고, 줄은 아파트 5층에서 지상까지 닿을 만큼 길었다.

쓸데없이 줄을 왜 모으냐는 질문에 조카는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재미있잖아요.” 사람은 이득도 손해도 되지 않는 무해한 일을 할 때 행복하다는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조카처럼 나는 마지막으로 무해한 일을 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돌이켜보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생산적이지 않은 일은 시간 낭비라 생각하면서, 정작 쉼이 필요할 때는 습관적으로 SNS와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낭비했다.

한 60대 여성이 인생에서 가장 잊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말했다. “편찮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좋아하시는 회를 잔뜩 사드리고 나서 생전 처음 노래방에 모시고 갔죠. “엄마 노래 한번 불러봐!” 하면서 마이크를 드렸더니 들어본 적도 없는 옛날 노래를 엄마가 막 심취해서 부르셨어요. 엄마는 돌아가시고 이제 없지만 아직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고 그립네요. 대단한 기억보다는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암투병을 하는 환자들은 기적이 일어난다면 특별한 순간보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 산책도 하며 무해한 일상을 보내고 또 가족들과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를 바랬다.

무해한 것들은 소중하다. 무해한 행동들로 행복해진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행복에 더 가까워진다. 목적 없는 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무해한 것들은 큼지막한 바위가 아니라 자잘한 자갈과 같다. 자갈은 바위들 사이에 틈새를 메우며 삶을 단단하게 한다. 무해한 기억들이 많아야 기쁨이 무너지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삶을 살아낼 수 있다.

가끔 무해한 시간을 보내자. 사랑하는 이에게 좋은 음식, 좋은 것들을 사주겠다고 삶의 많은 부분을 허비하지 말자. 우리는 비싸고 화려한 레스토랑보다, 평범한 하루 속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음식을 나눴던 무해한 일상을 더 오래 기억한다. 또 소망한다.

강원남 행복한 죽음 웰다잉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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