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발언대] ‘범죄 피해자 지원’은 국가의 의무

입력 2023-10-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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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인 경기도의회 의원
▲이기인 경기도의회 의원

최원종 사건(일명 분당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도 벌써 석 달이 지났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피해자 고(故) 김혜빈 씨의 어머니는 여전히 지원책을 찾아 헤매고 있다. 연명 치료 기간 병원에 상주하면서 생업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고 그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계는 더욱 팍팍해졌다.

8월, 피해자 입원비만 6일간 1300만 원에 달한다는 사연이 알려졌다. 이를 접한 정부 당국은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지원을 제공하라’고 즉시 지시했다. 참 고마웠다. 범죄로 사망·중상해 등을 입은 피해자와 유족은 연간 1500만 원까지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특별결의’를 통해 추가적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혜빈 씨 어머니가 필자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알아보니 추가 지원할 필요가 없어 특별결의는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하네요…혜빈이 생명의 가치가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요?’

장관까지 나서 지원을 제공하라고 했지만, 실제 추가 지원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연명 치료에 쓰인 병원비는 대부분 피해자의 의료보험에서 충당했고, 나머지는 정해진 한도를 벗어난 수준이 아니어서 특별결의까지는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결국, 유족들에게 돌아간 지원은 검찰에서 지급 보증한 약 1500만 원의 치료비, 3개월간 지급된 월 100만 원의 생활지원비, 그리고 약 400만 원가량의 장례비가 전부다.

생면부지의 가해자가 벌인 범죄로 하나 뿐인 딸을 잃은 심정도 참담한데, 생계까지 걱정해야 하는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고(故) 김혜빈 씨 어머니의 메시지를 받고서 한동안 많은 무력감을 느꼈다.

왜 이런 걸까.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30조, 타인의 범죄 행위로 인하여 생명 · 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모든 국민이 갖는 ‘기본권’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정치가 이 기본권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을까.

범죄 피해자에게 있어 국가의 지원은 신기루에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지원이 가능한지 제대로 안내해 주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 지원책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한다. 신청 절차는 복잡하고 제출해야 할 서류는 산더미다. 지원 규모도 문제다. 앞서 언급했듯이 피해자 치료비와 생계비 지원은 연 1500만 원과 3개월간 월 100만 원 수준. 상해·유족 구조금도 피해자가 받는 평균 임금의 일정 개월 수를 곱한 금액 수준인데 이마저도 상한액을 두고 있어 충분치 못하다는 평가다. 고(故) 김혜빈 씨의 유족들에게 나올 구조금은 약 4000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또 법무부 및 검찰의 지원 이외에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은 놀랍게도 0원이다. 범죄피해자 보호법에는 지자체 차원의 범죄 피해자 지원책을 별도로 마련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범죄피해자 보호법 제7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손실 복구 지원 조항이 그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사례를 확인해 보니, 지자체 차원의 범죄 피해자 직접 지원 예산이 책정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신림동과 서현동의 관할 지자체인 서울시와 경기도가 ‘이상 동기 범죄 예방 및 피해자 지원 조례’를 발의해 지원에 나섰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평가다.

물론 범죄 피해자에게 필요한 지원이 꼭 물질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심리 치료나 향후 가해자와의 소송에서 필요한 법률 지원 등 피해 보상과 관련된 모든 것이 반드시 금전적 지출을 수반한다. 경제적 지원이 매우 중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범죄 피해자 기금의 한정적 재원, 예산 증액 논의에 대한 정치권의 공전, 다른 지원과의 형평 등등 저마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 동기 범죄로 피해를 본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는 이를 기다릴 여유도, 감당할 여력도 없다.

피해자 보호와 지원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더욱 무겁게 다뤄지는 현실, 정신 질환을 호소하는 묻지 마 가해자에 대한 감형, 계속 답보상태인 이상 동기 범죄 피해자에 대한 지원. 이 모든 것은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제2의 혜빈이네 가족’이 겪을 사회적 문제이자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범죄는 치안의 문제이고, 치안은 국가의 의무이다. 국가가 범죄를 막지 못해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는 피해자, 그리고 그 가족들에 대한 지원이 더는 각박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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