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역 흉기 난동범’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3-07-24 16:31 수정 2023-08-07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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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신림동 칼부림’ 피의자 조 모 (33)씨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23일 오후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신림동 칼부림’ 피의자 조 모 (33)씨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대낮 서울 관악구 신림동 번화가에서 무차별로 흉기를 휘둘러 4명의 사상자를 낸 ‘신림역 흉기 난동범’ 사건이 충격을 안겼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조 씨는 21일 오후 2시 7분께 지하철 2호선 신림역 4번 출구 인근 상가 골목 초입에서 20대 남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뒤 30대 남성 3명에게 잇따라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살인미수)를 받습니다.

사건 당일 길이 100여m인 골목에서 남성 3명을 흉기로 찌르고 골목을 빠져나간 조 씨는 인근 모텔 주차장 앞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상대로 범행했는데요. 첫 범행 6분 만인 오후 2시 13분께 인근 스포츠센터 앞 계단에 앉아 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습니다.

병원으로 후송된 부상자 3명 중 1명은 퇴원해 통원 치료를 받고 있고, 나머지 2명은 입원 치료 중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위독한 상태로 알려진 피해자는 고비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죠. 조 씨는 사망자 1명을 포함해 피해자 4명 모두와 일면식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러 ‘묻지마 범죄’라는 의견이 나오죠.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24일 연합뉴스에 “일단 묻지마 범죄가 맞다”고 진단한 뒤 “반사회적 동기에 기인해서 본인의 폭력적 성향을 발현하는 사이코패스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이 교수는 조 씨의 범죄 이력을 봤을 때 충분히 고위험군으로 볼 수 있는데도 관계 당국에서 충분히 관리·감독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런 사람들은 갑자기 이렇게 되는 게 아니라 상당 기간 분노가 쌓이고 사소한 불법 행위를 저지르길 반복하면서 내 책임은 없다는 식으로 피해의식이 발현한다”며 “위험한 사람도 관리하지 않고 위험 신호도 포착하지 못하면 묻지마 범죄를 막을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실로 조 씨는 폭행 등 전과 3범에 소년부로 송치된 전력 14회를 합쳐 총 17건의 수사 경력 자료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즉 17번의 교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끝내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엽기적 범행을 저질렀다는 건데요. 이에 사회 안전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도 확산하고 있죠.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서 행인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조모씨가 23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는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림역 인근 상가 골목에서 행인을 상대로 무차별 흉기를 휘두른 조모씨가 23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향하는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묻지마 범죄’ 중에서도 ‘불만형’ 해당할 듯”…전과 있고 폭력·상해와 연관

전문가들은 조 씨의 범행이 ‘묻지마 범죄’ 중에서도 ‘불만형’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2014년 발간한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묻지마 범죄’는 △만성불만형 △현실분노형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요. 만성불만형은 전과 기록이 많아 오랜 기간에 걸쳐 불만을 현실에서 표출해온 경우, 현실분노형은 전과는 없으나 한동안 쌓인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경우 등을 일컫습니다. 조 씨의 경우 오랜 기간에 걸친 전과가 수차례 있어 불만형에 해당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조 씨의 범행엔) 20대, 30대 남성에 대한 개인적 분노가 분명 있었다고 보인다”며 “‘정유정 사건’처럼 개인적인 분노,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 분노, 시기, 질투가 만들어놓은 범죄”라고 내다봤습니다.

승 위원은 “국가가 그 동기를 못 찾았을 뿐, 소위 말하는 ‘묻지마 범죄’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가가 이런 영역에 있는 젊은 청년들에 대해서 조금 더 적극적인 관리, 아니면 정보에 대한 어떤 파악 이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죠. 소위 ‘묻지마 범죄’로 부르는 범죄 행각에 대해서 국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윤 위원 역시 2021년 경찰청과 한국문화및사회문제심리학회 주최로 열린 ‘이상동기 범죄, 현실적인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2021년 범죄분석 학술세미나’에서 “‘묻지마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무부 등에서 재범고위험군을 따로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관리해야 한다”, “등급별 통합사례 관리를 통해 경찰, 보호관찰, 교정, 사회복지 시설이 공유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분석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죠.

▲(뉴시스)
▲(뉴시스)
우발적 범죄 매년 증가 추세…재범 비율 높지만 ‘통계’조차 없어

우발적 동기에 의한 범죄는 일반 시민 입장에서 큰 불안감을 자아냅니다. 2016년 강남역 인근 주점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김성민 사건, 2018년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김성수 사건 등이 대표적인 ‘묻지마 범죄’ 사례로 꼽히는데요. 이들은 모두 일면식도 없던 이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공통점을 보입니다.

최근엔 20대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정유정 사건, 귀갓길 여성을 이유 없이 폭행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공분이 가시기도 전이라 충격이 더욱 큰 상황입니다. 이들 사건은 범행 동기가 불투명하고, 평범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유 없이 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점에서 예방이나 대비도 어려워 적지 않은 공포를 자아내죠. 문제는 이 같은 맥락의 범죄가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겁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발적 동기에 의한 범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요. 그 가운데 살인·상해 등 중범죄의 비율이 무려 8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묻지마 범죄’도 여기에 포함되는데요. 재범 비율은 75%에 달합니다.

이에 경찰청은 지난해 1월 ‘묻지마 범죄’를 ‘이상 동기 범죄’로 규정하고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법적 개념부터 전무한 상황이라 아직 구체적 통계나 예방책을 내놓진 못하고 있습니다. 법원도 ‘묻지마 범죄’가 “사회적으로 큰 불안감을 야기해 해악이 크다”고 보고 있지만, 통계를 낼 기준조차 마련되지 않은 실정인 거죠.

▲2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현장에서 시민들이 추모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23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역 ‘묻지마 흉기난동’ 사건 현장에서 시민들이 추모공간을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형사사법 시스템 제대로 작동하나” 지적도…국가 차원 관심 필요해

이번 흉기 난동 사건은 시민 안전에 또 다시 경종을 울렸습니다. 다수의 안전을 불시에 무너뜨릴 수 있는 중대 범죄인 만큼, 전문가들은 전수 조사 등을 통해 범행 이유를 규명하고 교화 등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22일 신림동 사건 현장을 방문해 “사이코패스 등에 대한 관리 감독 방안을 더 고민해보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개인 스스로가 방어 태세를 갖추는 게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언급되고 있어 씁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특히 조 씨의 경우 그간 수차례 폭행 등 전과로 처벌받은 바 있어 교정·교화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방증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합니다. 조 씨는 12세부터 18세까지 대략 1년에 2번씩 기소된 셈인데, 고위험군으로 분류돼야 하는데도 관계 당국에서 그를 충분히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잇따릅니다.

일각에서는 ‘묻지마 범죄’가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직접적 연관성이 없을 뿐, 범행 동기와 배경은 명확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조 씨의 경우도 미리 흉기를 준비했고, 자신이 익숙하고 인파가 많은 신림동을 택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죠. 이에 이번 칼부림 사건을 ‘묻지마 범죄’, ‘사이코패스 여부’ 등으로 단순 치부할 게 아니라 범행 원인을 보다 명확히 규명하고 생애 주기를 살펴보면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데요. 조 씨는 신체 능력이 약한 여성이나 노약자가 아닌 젊은 남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정황이 포착됐고, 범행 이후 도주하지 않은 점 등으로 기존 유사 범죄와 다른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24일 YTN ‘뉴스라이브’과의 인터뷰에서 “(조 씨의 경우) 상당히 계획적이고 사회에 복수행위를 하겠다고 하는 분명한 왜곡된 의식이 해소되지 않은 형태”라며 “(그간) 형사사법기관, 경찰, 검찰, 법원, 교도소, 보호관찰관으로 이어지는 형사사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는 한 번도 없었다”고 짚었는데요.

이어 “범죄자가 사회에 나왔을 때 범죄를 막고 재사회화를 할 수 있는가, 이런 것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없다. 법무부의 교정행정에 대한 대폭적인 개선과 현대화의 작업도 함께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수정 교수 역시 조 씨에 대해 “이판사판이라는 심정도 있고 ‘처벌받아 봤자’라는 걸 알기 때문에 도망가지 않은 것”이라며 그가 교도소에 수용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고, 승재현 위원도 “자신의 범죄가 사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저항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걱정하지 않는 모습”이라며 “보통 이런 범죄를 저지른 후에는 자해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 씨는 과거 여러 경험으로 인해 교정시설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은 것 같다”고 봤습니다.

현 시스템으로는 유사·모방 범죄를 막기에도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의 경우 1년 뒤 관악구에서 모방범죄가 일어나기도 했죠.

이에 당국이 범행을 17차례나 적발하고도 조 씨가 흉악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을 차단하지 못한 원인을 진단하는 게 우선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범행 동기와 배경을 명확히 규명해야 유사한 맥락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요. 분노성 범죄 요인을 차단하고, 재범 위험자에겐 성범죄자처럼 전자팔찌를 부착하는 등 더 큰 참사를 막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연일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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