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바다 악몽 재현?…강남, ‘상습 침수’ 불명예 못 벗어나는 이유 [이슈크래커]

입력 2023-07-1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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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이 한강 수위 상승으로 물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이 한강 수위 상승으로 물에 잠겨있다. (연합뉴스)
지난밤부터 쏟아진 집중 호우로 곳곳에서 정전과 침수, 도로 축대 붕괴 등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교통 상황에 차질이 생기고 시민들이 한밤중 집에서 대피하는 등 불편을 겪었습니다.

13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30분쯤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도로 축대가 강한 비에 무너져 토사가 유출됐습니다. 이 사고로 인근 20가구 40여 명이 임시 숙소로 급히 대피했는데요. 서울 각지의 반지하 거주민 등도 침수를 우려해 일부 대피하면서 이틀간 집중호우로 서울에서 일시 대피한 인원은 서울에서 총 38가구 79명으로 집계됐습니다.

광진구 중곡동, 강동구 암사동, 은평구 불광동, 성북구 성북동 등 4곳에서는 주택 등 건물 옹벽이 파손됐습니다. 암사동에서는 한 상가의 뒤편 담벼락이 무너져 담벼락과 붙어있던 상가 화장실 유리창이 깨졌는데요.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습니다.

도봉구 쌍문동, 마포구 성산동, 강남구 역삼동, 강서구 가양동, 은평구 불광동, 노원구 상계동 등 8곳에서는 가로수가 쓰러졌고, 서대문구 홍제동 안산 부근에서는 가로수로 인해 고압선이 쓰러지면서 일대 2000가구 이상에 전기 공급이 중단됐습니다.

도로 침수도 속출했습니다. 강남역과 사당역 인근 도로에서는 미처 배수되지 못한 빗물이 맨홀을 통해 역류하면서 일부 도로가 물에 잠겼는데요. SNS 등지에 올라온 사진과 영상을 보면, 육중한 맨홀 뚜껑이 요동치다가 아예 뚜껑이 열리면서 물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모습입니다. 강남역 부근과 역삼동 차병원사거리 등지에서도 성인 발목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습니다. 퇴근을 서두르는 시민들이 몰리면서 한때 차량 통행에도 큰 불편이 있었죠.

지난해 침수 피해가 난 강남 영동시장 일대도 도로에 물이 차올랐습니다. 구청 관계자들이 작업을 벌이면서 10분 만에 물이 빠지긴 했지만, 시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는데요. 지난해 8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큰 피해를 겪은 강남을 중심으로 ‘작년과 같은 물난리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8일 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부근 도로와 인도가 물에 잠기면서 차량과 보행자가 통행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8일 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부근 도로와 인도가 물에 잠기면서 차량과 보행자가 통행하는 데 불편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강남, 2010년 이후 수차례 침수 겪어…물바다 왜 반복되나

폭우가 휩쓸고 간 지난해 8월, 강남역 일대는 전쟁터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 강남을 중심으로 서울에는 시간당 최고 140㎜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는데요. 이는 1942년 8월 5일 관측된 서울 지역 시간당 강수량 최고 기록(118.6㎜)을 80년 만에 넘어선 기록이었습니다. 도로가 물바다로 변하면서 승용차들은 완전히 잠겨버렸죠. 창문을 통해 긴박하게 대피한 운전자들은 차량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지하철 역사에도 폭포처럼 물이 들어찼기 때문입니다.

당시 1만 대가 넘는 차량이 침수됐고, 인명 피해까지 발생했습니다. 하수도가 넘치면서 맨홀 뚜껑이 날아가 물이 역류하면서 도로를 뒤덮었는데요. 맨홀에 빨려 들어간 여성과 그를 구하려는 동생이 물살에 휩쓸려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강남역 인근 지하 주차장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강남역 침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이 부근에서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침수가 5차례나 되풀이됐습니다. 2010년 이후 거의 2년에 한 번 침수가 반복된 꼴이죠. 2010년과 2011년 국지성 호우 때도 하수가 역류하는 등 일대가 물바다로 변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2015년 서울시는 강남역 일대에서 침수가 반복되는 고질적인 원인으로 △주변보다 지대가 낮아 물이 고이는 항아리 지형 △강남대로 하수관로 설치 오류 △반포천 상류부 통수능력 부족 등을 꼽은 바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요인은 강남 일대의 ‘항아리 지형’인데요. 강남역은 바로 옆에 있는 역삼역보다 14m나 낮다고 합니다. 인근 논현역이나 서초역보다도 10m가량 지대가 낮아, 고지대에서 내려오는 물이 곧잘 고이는 겁니다.

여기에 아스팔트로 뒤덮인 면적이 넓다는 사실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스팔트가 전체 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고인 빗물이 땅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도로를 따라 흐르거나 고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하는데요. 강남은 포장률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역 중 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에 서울시는 항아리 지형과 하수관로 설치 오류 등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10년간 총 3조6792억 원을 투입해 개선에 나섰습니다. ‘배수구역 경계조정’에 사업비를 배정하고, 반포천 상류부 통수능력 부족을 대비하기 위해서 350억 원가량을 투자, 서울남부터미널 일대 빗물을 반포천 중류로 분산하는 지하 배수시설 ‘유역분리터널’ 공사도 추진했습니다.

그러나 배수구역 경계조정 공사는 계속 지연됐고, 당초 2016년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예산과 시설물·창고 등 지장물 이설 문제로 2024년까지 연장됐습니다. 반포천 유역분리터널 공사도 2년 반 지연된 2018년에야 착공, 지난해 6월 완공됐죠. 그 사이 2020년 8월 강남역에 하수가 역류하는 피해가 또 발생했습니다. 예정대로 공사가 완료됐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상황이었죠.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세대 창문에 수해 예방용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다. (뉴시스)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세대 창문에 수해 예방용 물막이판이 설치돼 있다. (뉴시스)
침수 피해 막을 장·단기적 대책 마련했지만…미비점 여전해

올해도 많은 비가 예상되면서 서울시는 침수 위험을 미리 알려 주민 대피를 유도하는 예보와 경보제를 도입했습니다. 강수량이 시간당 55㎜ 이상이면 예보를 발령하고, 더 심해지면 경보를 내리고 재난문자를 발송하는 건데요. 예보, 경보가 울리더라도 잘 듣지 못하거나 빨리 대피하지 못하는 재난 약자를 위해 5명을 하나의 단위로 묶는 동행 파트너 제도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도로의 사전 통제나 대피 조치가 이뤄지는 경보 발령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서울시는 지역마다 상황이 다른 만큼 자치구마다 폐쇄회로(CC)TV 감시와 현장 점검을 통해 경보 발령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인데요. 작년처럼 짧은 시간에 물이 차오른다고 가정하면, 신속한 대처를 위해 명확한 기준이 필수적인 상황입니다.

또 지난해 맨홀 역류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만큼, 서울시는 맨홀 뚜껑 아래 수백㎏ 무게까지 견딜 수 있는 철제 그물망을 침수 취약 지역을 위주로 설치해 추락을 방지하기로 했는데요. 설치율이 미미합니다. 서울 시내 맨홀 28만여 개 가운데 방지시설이 설치된 건 4% 수준인 1만여 개고, 강남구의 설치율도 5%에 그쳤습니다.

침수 피해 우려가 큰 반지하 주택 약 2만 호 중 침수방지시설이 설치된 곳 역시 30% 정도에 그칩니다. 이는 집주인과 세입자,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탓이기도 한데요. 서울시는 적극적으로 집주인 동의 절차를 밟아 설치율을 끌어올리겠다고 부연했지만, 회의적인 반응도 적지 않습니다. 개폐형 방범창, 물막이판 등을 설치해봤자 근본적인 침수 방지 대책이 전무한 상황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시의 장기 대책으로는 강남역·도림천·광화문 일대 ‘대심도 빗물 배수 터널’ 착공을 꼽을 수 있습니다. 시간당 강수량 95㎜를 처리할 수 있는 기존 배수 용량을 11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로 지하 50m쯤에 큰 배수 터널을 뚫어, 빗물을 인근 하천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배수 능력을 확보하고자 하는 건데요. 올해 착공해 2027년 말 완공하겠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는 비용 등 문제로 서울시와 기획재정부가 아직 협의를 진행 중입니다. 상황에 따라 시설 공사는 앞으로도 연기될 수 있어, 당분간 침수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이 없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계속된 14일 서울 여의도 63아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에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계속된 14일 서울 여의도 63아트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강에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장맛비, 주말까지 이어지면서 최대 400㎜ 물폭탄…추가 피해 발생 우려

정체전선의 영향으로 주말까지 장맛비는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16일까지 충남과 전북 지역에는 400㎜가 넘는 물벼락이 떨어지겠는데요. 충북과 전남, 경북 지역에도 300㎜가 넘는 집중호우가 예상됩니다.

수도권과 강원 내륙·산지, 경북 북부 내륙을 제외한 경상권은 30~100㎜, 강원 동해안과 제주도 남부·산지는 20~70㎜의 비가 예상됩니다. 앞서 내린 비로 지반이 무척 약해졌고, 앞으로도 호우가 예상되면서 산사태 위험까지 커지고 있는데요. 전국 대부분 지역에 산사태 위기 경보 ‘심각’ 단계가 발령 중인 가운데, ‘산사태 특보’도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곳곳에서 돌풍과 벼락도 동반될 것으로 예상돼, 외부 활동 시 각별한 유의가 필요합니다.

기상청 관계자는 “정체전선이 한반도에 있다는 건 언제든 비가 내릴 조건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라며 “다음 주까지는 장맛비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이상 기후 등 영향으로 장마의 형태도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해 강남역 일대 침수 피해를 일으킨 폭우도 장마가 끝난 후인 8월에 쏟아졌죠. 장마 기간 외에도 기습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시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건데요. 이에 근본적인 해결안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측의 고심과 신속하고 일관된 도시 침수 관련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연일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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