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편에 '자산어보' 유배가듯...솔직해서 공감가는 영화에세이

입력 2023-07-06 15:13 수정 2023-07-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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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소속된 팀은 예산도 5분의 1, 매출도 5분의 1….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이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상사의 시청률 압박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던 드라마PD는 대규모 조직개편에 떠밀려 팀을 옮기게 된다. “책상에 있는 물건을 카트에 실어 새로운 팀으로 이사를 가는데, 고작 몇 미터도 되지 않는 길이 아득한 유배 길처럼 느껴졌다”던 그는 아마도 흑산도로 유배간 정약전의 심정이 이랬을까, 싶었다고 한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자산어보'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배경이다.

▲'당신의 세계는 안녕한가요' 책표지 (교보문고)
▲'당신의 세계는 안녕한가요' 책표지 (교보문고)

지난달 26일 출간된 ‘당신의 세계는 안녕한가요’는 영화를 좋아하는 다섯 명의 저자들이 자기 개인사를 가감없이 끄집어내 글감으로 활용한 영화에세이다. 문책성 인사이동을 겪은 직장인이자, 위기의 시간을 지나온 부부이자, 고시원과 원룸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던 1인 가구로서 경험했던 강렬한 시간을 과감하게 터놓는다.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을 법한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하는 훌륭한 연결고리가 된다.

책의 힘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솔직함에서 나온다. 원치 않았던 인사이동에 괴로워하던 저자 류과(류기영)는 집에서는 구구단을 외우지 못하는 딸에게 역정을 내고 마는 아버지로 변모한다. “7X4는?”, “…”, “6X8은?”, “…” 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화가 난 그는 자기 모습에서 불쑥 정지우 감독의 ‘4등’ 속 엄마(이항나)를 연상한다. 수영 등수에 집착하며 자식의 불행에 눈감고 마는 서늘한 얼굴… 부모가 되기 전엔, 자신도 경쟁을 싫어하는 줄로만 알았다.

6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저자 류과는 “너무 솔직하게 써서 놀랐다는 주변의 반응이 많았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책이 출간되고 지인에게 소식을 전할 때가 되니 이 이야기를 알아도 되는 사람, 알면 안 되는 사람, 알아서 불편해질 사람이 떠올랐다”며 웃었지만 “그럼에도 쓸 당시에는 솔직하지 않으면 독자에게 공감이나 위로를 전달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당신의 세계는 안녕한가요' 저자 류과(류기영)
▲'당신의 세계는 안녕한가요' 저자 류과(류기영)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며 영화에세이까지 쓴 저자 다섯 명은 류과가 주도해 결성한 팟캐스트 ‘퇴근길 씨네마’에 출연한 ‘영화 동지들’이기도 하다.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도 성별도 고르게 분포돼있던 저자들의 경험을 녹여낸 만큼 류과는 “읽는 사람이 닥친 상황에 따라서 재미있게 느끼는 저자의 글도 다를 것”이라고 했다. 그 끝에 각자의 마음에 가 닿는 영화도 서로 달라진다.

갓 결혼했거나 육아휴직중인 부부라면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를 사례로 든 저자 로사(이서연)의 분량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두 아이 육아를 위해 퇴사한 뒤 도리어 남편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 된 위기의 시간을 솔직하게 드러내는데 “우리는 부부라는 이유로 각자의 내면에서 해결해야 할 숙제들을 미숙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저격하고 있었다”고 썼다. 자기 문제를 배우자에게 억지 전가한 뒤 후회해본 적 있는 기혼자라면, 그 마음 알아주고 달래주는 문장은 적잖은 위로가 된다. 책을 기획ㆍ출간한 틈새책방 이민선 대표는 "내 아내도 이런 고민을 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가장 마음에 남은 대목이라고 손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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