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풍경]암(癌), 그 또 다른 고통과 마주하며

입력 2023-05-17 05:00 수정 2023-05-1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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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당신들이 뭔데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나 해?”

핏발이 선연한 눈으로 우릴 노려보던 환자는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칼을 손목 위로 가져갔다. 한 번 자해를 시도했던 터라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다행히 곁에 있던 직원의 기지로 위험한 순간은 모면했지만, 그래도 하얀 손목은 금방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는 말기 위암 환자였다. 수술할 수도 없고, 항암치료도 효과가 없었다. 점점 심해지는 고통과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그의 정신세계는 피폐함을 넘어 분노와 우울로 가득 찼다.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의 코리나 셀리거 베엠 교수팀이 2200만 명의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28개 연구를 분석해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암에 걸린 사람의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85% 더 높다고 한다. 그리고 심각한 우울증이나 정신적인 문제에 직면할 확률도 높다.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연구한 정신과 의사 퀴블러로스는 그들이 겪는 심리변화를 5단계로 분류했는데, “난 절대 암일 리가 없어!”라고 부인하는 ‘부정’의 단계부터 “왜 하필 나야?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의 ‘분노’, 질병을 인정하는 ‘타협’ 그리고 ‘우울’의 단계를 넘어 죽음에 순응하고 준비하는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이 과정이 어떤 사람에게는 순차적으로 나타나지만, 일부에선 뒤섞여 혼란한 반응을 보이는 수도 있다. 그중 가장 안타까운 환자는 분노와 우울의 단계에 멈춰 마지막을 고통스럽게 맞이하고, 가족이나 이웃들과 화해 없이 상처를 주고 생을 마감하는 분이다.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긴 쉽지 않다. 더구나 고통과 죽음 앞에선 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편안한 죽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모든 이의 소망일 것이다. 따라서 분노와 우울의 단계는 짧게, 그리고 수용하고 준비하는 단계를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요즘은 말기 암이나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의 마지막을 돌보는 호스피스제도가 생겨 도움을 받지만, 관련법과 제도의 불충분, 시설과 전문인력의 부족과 지역사회 및 가정 호스피스제도와의 연계 어려움이 문제로 제기된다. 또, 종교단체나 봉사단체에서 운영하는 기관도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있고, 정신과를 말기 암 환자 스스로 찾기도 어렵다. 짧은 진료 시간에 쫓기는 우리나라 의료실정에서 모든 걸 의료진 개인에게 맡기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발암물질에 노출이 많아지고 수명이 길어지며 암의 발생도 증가하고 있는 현재 암 환자들이 겪어야 하는 정신적 아픔에도 더 관심을 기울이고 이에 따른 법과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암(癌)! 이제 남의 고통만은 아니다. 박관석 보령 신제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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