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는 지금] 다시 ‘산업정책’ 깃발 든 중남미

입력 2023-05-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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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EU, 자국우선주의 정책 노골화

멕시코 등 산업육성에 정부개입↑

세계 공급망 재편에 동참하고

신성장동력 마련에 팔 걷어붙여

바야흐로 산업정책의 시대다. 정부가 국가 경쟁력 제고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특정 산업에 재정을 적극적으로 투입하는 모습이 세계 각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을 금기시해 오던 미국조차 자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 등 첨단 산업에서 기술패권을 쥐고자 정부가 유례없는 수준으로 개입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초당적 지지로 통과된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은 미국의 산업정책 강화 기조를 보여주는 예다.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활용해 반도체와 전기차 산업의 가치사슬을 자국 위주로 재편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유럽연합(EU) 역시 자체 보조금 규제를 완화하고 친환경 산업 등 전략산업에 대한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늘리기로 했다.

줄곧 자유 시장질서와 국제 공조를 강조해 온 미국과 유럽연합이 자국우선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자신들의 구상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에 희생을 강요하고 전통적인 동맹국에 부담을 지우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주요국이 디지털전환과 그린전환을 축으로 속도를 더해가는 세계 산업환경 변화에 국제 공조보다는 자국 또는 경제블록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무게를 싣고 대응하고 있다. 미·중 경쟁,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1990년대부터 번성해온 세계화 패러다임에 대한 의문이 커진 탓이 크다.

이미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산업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글로벌 산업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중남미 주요국 역시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빠르게 재편되는 세계 분업구조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공감대가 깔려 있다.

멕시코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 구상에 맞춰 자국의 산업정책을 설계하고 있다.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와 USMCA(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를 거치며 미국의 필수불가결한 경제협력 파트너로 자리매김한 멕시코는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 계획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꾀하고 있다. 작년 9월 열린 양국 간 고위급 경제대화와 올해 1월 개최된 북미 3개국 정상회담의 공통된 의제는 전기차, 반도체, 재생에너지와 같은 새로운 산업에서의 공급망 협력 강화였다.

브라질 역시 산업정책을 통해 신성장동력 마련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 제조업 일자리가 11%가량 감소한 것으로 밝혀진 가운데, 올해 1월 임기를 시작한 룰라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에서부터 ‘재산업화’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아직 룰라 정부의 산업정책 방향이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집권 기간 제조업 육성이 매우 높은 정책 우선순위를 부여받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최근 그가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것도 중남미 내 미·중 세력 싸움을 지렛대 삼아 고부가가치 제조업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중남미 주요국에서 이어진 제조업 육성 정책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시기 시행된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은 산업구조를 개편하고 준수한 경제성장률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인위적인 정부 개입과 지원에 기댄 기업의 방만 운영이 계속되자, 산업경쟁력이 저하되고 대규모 재정적자가 발생하며 결국 1980년대 외채위기로 이어졌다.

중남미에서 산업정책이 항상 쓰라린 실패로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세계적 수준의 브라질 항공산업 발전의 배경에는 민·학·연이 협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한 정부 정책이 있었다. 중남미에서 가장 친시장적인 경제정책을 유지해 왔다고 평가받는 칠레에서도 산업정책 성공사례가 적지 않다. 칠레가 연어, 포도, 블루베리 등 비전통적 제품을 수출할 수 있게 된 데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과 재정 투입이 큰 역할을 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앞다퉈 산업정책을 내놓는 판국이다. 중남미 역시 좋든 싫든 정부가 산업 발전에 깊이 관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2010년대 시작된 저성장 국면에 이어 코로나19라는 예기치 않은 충격까지 덮치면서 침체한 중남미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려면 산업정책의 성공이 절실하다. 빠르게 재편되는 세계 분업구조에서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이미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는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저숙련 노동력을 위한 신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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