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李)밥에 고깃국'과 열등재

입력 2023-03-30 05:00 수정 2023-03-3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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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쌀밥을 달리 부르는 말은 '이(李)밥'이다. 조선시대에는 벼슬길에 올라야 이(李) 씨 임금이 내리는 쌀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은 백성들의 소원이었다. 그만큼 쌀이 부족했고, 요원했고, 또 중요했다.

쌀이 부족해 동남아 여행에서 별미로 맛보는 안남미를 우리나라가 수입한 적도 있다. 1900년대 초반 대한제국은 쌀값 안정과 식량 확보를 위해 안남미를 들여왔다. 1950년대는 쌀이 부족해 교사와 공무원의 월급으로 안남미를 보급하기도 했다.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쌀 자급을 이루지 못했다. 통일벼가 개발되면서 비로소 '민족의 숙원'인 쌀의 자급자족을 이뤄냈고, 이는 이후 눈부신 경제발전의 토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쌀은 우리 식생활, 전통문화, 산업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쌀은 이제 열등재 신세가 됐다. 경제학에서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늘어나는 정상재와 달리 열등재는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감소하는 상품이다.

1963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05.5㎏이었고, 꾸준히 증가해 1979년에는 135.6㎏에 달했다. 1980년을 기점으로 쌀 소비는 감소세로 전환했고, 지난해에는 56.7㎏까지 낮아졌다. 1인당 국민소득은 꾸준히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1980년 이후 쌀은 열등재가 된 것이다.

우리 생활의 근간이었던 쌀을 단순히 경제학으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중요한 산물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농정(農政)이 이를 지키고 지원하는데 역점을 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먹거리가 다양화하고 생활 모습도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여전히 밥을 먹지만 삼시세끼 쌀밥을 먹는 날은 이제 손꼽을 정도다.

그렇다면 이제 농정도 변화해야 한다. 쌀 자급률은 100%에 육박하지만 식량자급률은 20%에 불과하다. 쌀은 여전히 소중한 농산업이지만 식량안보를 위해서도, 농업인의 소득 증대를 위해서도 새로운 방향이 필요한 때다.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야당의 주도로 국회에서 처리됐다. 정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꺼냈다.

농민과 농업을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이라지만 정작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양곡관리법의 내용보다 '대통령 제1호 거부권'이 더 이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쌀 문제다. 농업과 국민 건강, 식량안보를 모두 고려하는 정책을 위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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