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책임을 회피한 자리, 비극이 싹트는 토양

입력 2022-11-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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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태원 참사’로 전 국민이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국가적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위로·치유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재발 방지를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10월 30일 새벽, 참사 현장에 달려가 구조에 참여했던 의사 출신 신현영 의원은 본지 요청에 특별 기고를 보내왔습니다. 이투데이는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전하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핼러윈을 앞두고 들뜬 주말 밤이었다. 이태원은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누군가는 귀가를 서둘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축제의 중심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좁은 골목에서 벌어질 참사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피해의 규모를 숫자로 나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필자는 의사 출신 국회의원이다. 한밤중 곳곳에서 CPR을 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곧바로 재난의료지원팀에 합류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사고가 발생한 지 2시간이 지난 상황이라 이미 DMAT 팀들은 응급환자, 중환자들을 분류하고 이송을 마무리한 상태였다.

현장의 참담한 모습은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상황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현장 지휘 대응 과정에 아무리 힘을 기울여도 이미 사망했거나 손상이 온 분들이 많아 다시 회복시키기 어려웠다. 나름의 통제에도 구조현장은 지나가는 인파에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었다. 여전히 핼러윈을 즐기는 젊은 인파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그나마 부상이 작은 환자들은 의료 천막 앞에서 덜덜 떨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상황에서는 응급의료와 긴급이송에 대한 올바른 대응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살리기 위해 중증도에 따른 분류, 초기 처치와 이송에 일사불란한 대응이 제대로 되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런 대규모 압사 사고에서는 골든타임을 지키기가 어렵다. 현장의 의료진이나 전문가들은 사전에 예방하고 유사한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극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되어 간다. 슬픔은 여전하다. 하지만 포연이 조금씩 걷히며 사고 전후의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태원의 시민들은 사고 조짐을 먼저 알아챘지만, 경찰 등 당국의 무책임한 행동이 드러났다. 사고 발생 4시간 전부터 시민들로부터 신고가 빗발쳤지만 경찰의 출동 횟수는 4회에 그친 것으로 확인되었다. 출동 시간조차 늦었다.

▲의사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1일 새벽 이태원 해밀턴 호텔 앞에서 명지대 DMAT 팀원과 함께 구조활동에 나서는 모습.  (신현영 의원 페이스북)
▲의사출신인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31일 새벽 이태원 해밀턴 호텔 앞에서 명지대 DMAT 팀원과 함께 구조활동에 나서는 모습. (신현영 의원 페이스북)

신고에 대한 부실 대처와 늦장 보고는 이번 사고의 반쪽 측면일 뿐이다. 사고 당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조차도 현장에 접근하기 어려워 구호를 효과적으로 하기 어려웠다. 사전에 인파를 예측하고 필요한 규모의 경찰력을 배치해 통제하는 계획이 그만큼 중요했다. 현장에서부터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져야 하지만 책임을 아래로만 돌리려는 시도가 엿보여 상당히 우려스럽다.

국민 애도 기간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는 ‘지금은 애도해야 할 때’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애도를 방패 삼아 책임을 회피해서는 곤란하다.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애도하는 이태원 참사가 정권에 부담을 줄까 우려하여 갈등관리 방안을 내부에서 논의하고 있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기존에도 이태원은 많은 축제가 있었고 주최 측이 없었던 경우도 상당하다. 그렇지만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의 말대로 매뉴얼도 없고 주최자도 없었다면 더더욱 정부와 경찰과 지자체에 안전관리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주최자가 없고 관리 책임자가 없는 경우야말로 국가 또는 지자체가 책임 주체라는 걸 확실히 인식하게 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당장은 사건이 발생한 직후 정신적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다. 이분들에 대한 포괄적인 의료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생존자, 유가족, 피해자, 목격자, 구조요원 모두에 대한 심리적 지원은 당연하고, 원래 질병이 있거나 몸이 허약한 사람들도 자기 건강 관리를 방치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꼼꼼하게 챙겨주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

지금은 온 국민에게 치유가 필요한 시점이다. 진정한 애도는 우리 주변의 친구, 아들, 딸들이 무엇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서 시작된다. 위기 시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작동됐는지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려야 한다. 진상규명은 떠난 이들을 위한 과제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남은 이의 책무를 묵묵히 수행하겠다.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부상자들의 회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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