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먹통 대란, 제빵공장 사고, 그리고 대량 해고

입력 2022-10-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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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 (한성대학교 기업경영트랙)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가 먹통 대란을 일으키면서 전 국민의 소통 네트워크는 사실상 차단되었다. 카카오톡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단적인 사건이었다. 이번 대란이 국민들에게 안겨준 충격과 공포가 끝나기도 전에 SPC 계열 제빵공장에서 23세 여성 근로자가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우리가 자주 먹었던 빵과 다과 뒤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위험에 노출된 상황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는지 목격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사고였다. 여성 근로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인터넷에서는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푸르밀은 경영 악화를 이유로 17일 전 직원 400명에게 사업 종료와 함께 정리해고를 통지했다.

먹통 대란, 제빵공장 사고, 대량 해고는 인간존중 문화, 그리고 기본을 중시하는 리스크 관리가 여전히 국내 기업에 얼마나 부족한지 일깨워준 단적인 사건들이다. 2000년 이후 기업에서는 사회적 책임(CSR), 공유가치 창출(CSV)을 외쳤고 ESG를 강조하고 있었지만 기업 현장에서 이들 규범이 내재화되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 사건들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단순히 사고 발생에서만 기인한 건 아니다. 어느 기업에서나 뜻하지 않게 사고, 사건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사고를 대하는 경영진의 태도다. 먹통 대란으로 전 국민이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고 2G 시대로 다시 왔다는 항의가 쏟아졌음에도 카카오 경영진의 사과는 미숙했다.

제빵공장에서 여성 노동자가 비극을 맞았음에도 회사는 장례식장에 파리바게뜨 빵 2박스를 올려놓고 가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행태를 보였다. 유가족은 빵을 만들다가 희생한 고인에게 답례로 빵을 놓고 간 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이 소식은 각종 커뮤니티, 블로그, SNS에 옮겨져 불매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푸르밀 노동조합 역시 경영진의 비인간적 행위에 분노를 느낀다며 강력한 항의와 투쟁을 선언했다. 외부 고객에겐 가나초코우유 등 친밀한 제품을 선보였던 푸르밀이 정작 내부 직원에겐 한마디 상의와 위로 표현 없이 일방적인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적자의 원인이 경영진에게 있음에도 경영진은 그 책임을 전 직원에게 돌렸다.

기업 임원을 만나면 사회적 책임 또는 ESG를 실행하지 않는 기업이 요즘 어디 있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교육에선 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명성에 관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 경영진은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이 경영의 기본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강조한다. 그러나 이들 규범은 조직 내 수익논리 앞에서 철저히 무너진다.

전 국민이 공분한 먹통 대란, 제빵공장 사고, 대량 해고의 공통점은 인간성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 먹통 대란으로 사퇴한 카카오의 남궁훈 대표는 “사업을 책임진 대표로서 매출과 영업이익 관리를 주로 신경 썼다”고 밝혔다. 그 결과, 수익보다 더 소중히 지켜져야 할 사회적 책임, 인간존중의 태도는 쉽게 증발됐다.

수많은 연구는 경영진의 윤리의식과 윤리경영 강조가 조직구성원의 자긍심을 높이고 조직 몰입을 극대화할 수 있음을 다양한 실증을 통해 이미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기업에서 윤리의식과 경영진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던지면 당연한 얘기라며 귀담아듣지 않는 경영진이 꽤 많다. 언행 불일치는 그래서 발생한다.

카카오는 10년 전에도 먹통 사태를 일으켰고 그때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고객에게 약속했다. 위험의 외주화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만큼 비극적인 사고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그리고 불황 때마다 대량 해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에도 여기에 주목하는 경영진은 많지 않다. 비극은 점점 일상이 되고 있다.

효율성에 집중한 기업은 리스크 관리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고민과 투자를 실행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 위험시설, 신사업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투자가 선제적으로 이뤄졌다면 먹통 대란, 제빵공장의 비극, 대량 해고와 같이 인간성을 훼손하는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익성 앞에 인간성이 점점 뒤로 밀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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