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반도체 ‘타임어택’이 시작됐다

입력 2022-10-19 05:00 수정 2022-10-1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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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영 국제경제부 차장

1973년 최연소로 미국 상원에 입성한 조 바이든은 외교 ‘베테랑’ 제임스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을 만났다. 풀브라이트는 ‘신참’ 바이든에게 외교정책에 영향을 끼치고 싶다면 세출위원회에서 일하는 아칸소주 상원의원 존 매클렌런을 만나라고 조언했다. 바이든은 “풀브라이트가 ‘미국의 이익과 세계 지배는 우리가 어떻게 돈을 쓰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패권과 돈, 둘 사이의 묘한 관계를 바이든은 이때 직감했을지 모른다.

2021년 1월 최고령으로 백악관에 입성한 바이든은 반도체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도화선이 됐다. 반도체 공급이 막히면 산업이 멈추고 국가가 망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취임 한 달여 만인 지난해 2월, 바이든은 “1개의 못이 모자라 말발굽 편자가 망가졌고, 말이 달리지 못해 싸움을 할 수 없어 왕국이 멸망했다”며 반도체를 못에 빗대 그 중요성을 역설했다.

미국이 반도체를 지배해야 한다고 판단한 바이든은 전략물자 공급망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 결과, 전 세계 반도체 생산력이 아시아에 집중돼 있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 대만 TSMC의 시장점유율이 60%에 달했고 2위 삼성전자까지 합치면 70%가 넘었다. 미국의 반도체 제조 점유율은 12%에 불과했다. 분명한 지정학적 리스크였다. 유일한 경쟁자, 중국이 호시탐탐 대만 침공을 노리고 있다는 점은 최악의 변수였다.

반도체 패권을 꿈꾸는 바이든은 돈을 ‘쓸 줄’ 알았다. 돈으로 세계 강자들을 유혹하면서 또 그 돈을 족쇄로 사용했다.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약 74조 원)를 베팅하고 보조금을 쏟아부었다. 미국 보조금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비용을 절감하면서 세계 최대 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다.

반면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 돈을 받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투자를 금지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기업들로서는 또 하나의 거대 시장인 중국을 등져야 하는 셈이다. 미국은 중국의 손발을 묶고 격차를 벌릴 수 있게 됐다.

‘독이 든 성배’인 줄 알면서도 기업들은 줄줄이 미국 진출을 약속했고,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파운드리 절대 강자 TSMC는 2024년 양산을 목표로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고 있다. 파운드리 진출을 꿈꾸는 인텔도 뛰어들었고 삼성도 추가 증설을 발표했다.

미국이 주도권을 쥔 싸움이지만, 나머지도 마냥 순진하지는 않다. 2024년 완공 예정인 TSMC의 미국 공장은 5나노미터(nm·1nm는 10억 분의 1m) 기술을 사용하게 된다. TSMC는 그동안 대만 공장에서 3나노 칩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걸 들어주면서도, 기술 최강자 자리는 내주지 않겠다는 복안이다.

일본도 벼르고 있다. TSMC와 손잡고 구마모토에 공장을 착공, 2024년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유럽도 움직이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30 산업전략 ‘디지털 컴퍼스’를 발표하고 역내 반도체 생산을 10년 동안 2배 증가시킨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미국 제재로 궁지에 몰린 중국도 가만있지 않는다. 미 정부 금수 조치에 저촉되지 않는 28나노 생산으로 저변을 넓힌다는 전략이다.

따돌리려는 자와 따라잡으려는 자, 반도체 ‘타임어택(시간 내로 최대한 빠르게 완주하는 경기)’이 시작됐다. 0jun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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