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농식품 분야에서의 트리플 헬릭스 혁신(상): 빅데이터 기반 협업

입력 2022-07-27 05:00 수정 2022-07-2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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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교수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문정훈 교수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푸드비즈랩 문정훈 교수

국가의 과학기술혁신 정책과 관련하여 트리플 헬릭스(Triple Helix: 삼중 나선) 모형에 기반한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가 10여년 전부터 국내에서 본격화되었고, 이에 따른 혁신의 세 주체, 대학, 정부, 산업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 트리플 헬릭스 모형은 마치 DNA의 나선 구조처럼 세 주체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한 진화가 국가와 지역의 혁신을 만들어 내는 지식 생산의 동력원이 된다는 이론이다. 기존의 국가주도 R&D 정책의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트리플 헬릭스는 세 주체가 동등한 위치에서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대학은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 육성과 R&D를 수행하여 산업에 제시하고, 산업은 혁신과 성장, 그리고 지역 고용을 창출하며, 정부는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을 제안한다. 이에 따라 대학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 중심의 대학에서 연구 개발 초점을 맞추는 연구 중심의 대학으로, 나아가 국가와 지역의 사회적, 경제적 요구에 부합하는 지식을 창출하는 기업가적 대학(Entrepreneurial university)으로 변모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산학협력과 지적재산권의 상업화, 인큐베이팅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와 산하 정부출연 연구소도 트리플 헬릭스 기반 협력을 통한 실질적인 혁신을 끌어내기 위해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정부 주도 산ㆍ학ㆍ관 협력의 최종 결과물이 보고서와 지식재산의 창출이었다면, 최근에는 제품화 및 산업화까지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연구개발이 늘고 있다. 더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농식품 분야에서도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우리나라의 농식품과 농식품 생산 기반 및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과 보급을 총괄하고 있는 국가연구개발기관이다. 1970년대에 통일벼 품종을 성공적으로 개발, 보급하고 우리 환경에 맞는 다양한 다수확 품종 작물로 국민들을 배고픔으로부터 해방시킨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근 수입 흑돼지인 이베리코 돼지를 대체하는 프리미엄 토종 흑돼지 품종인 ‘난축맛돈’을 육종하여 상품화한 것도 농촌진흥청의 작품이다.

그러나 새로운 품종, 새로운 재배기술, 새로운 유통방식 등에 대한 연구개발을 수행함에 있어 어려움이 발생했는데, 공급 중심의 경제에서 수요 중심의 경제로 변모해감에 있어 급변하는 소비자와 시장에서의 요구를 캐치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새롭게 개발한 품종이나 기술, 이를 기반으로 한 제품이 시장에서의 요구와 맞지 않아 사장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촌진흥청에서는 20년 후를 내다보고 2010년 ‘소비자 빅데이터’ 구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국 1000가구의 3500여 소비자 패널을 대상으로 식료품 구매 영수증을 꾸준히 수집했다. 현재는 패널의 숫자를 보강하여 2282가구의 6200여 소비자로 확대 운영 중이며, 품목, 브랜드, 가격, 구매처, 구매시간 등의 정보까지 포함한 1200만 건이 넘는 식료품 구매 기록이 저장되어 있는 어마한 크기의 빅데이터를 지금도 계속 수집 중이다.

초기에는 농촌진흥청 내부에서도 굳이 이런 데이터를 비용을 들여 수집,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그러나 이 데이터가 10년 넘게 축적되니 시장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소중한 도구가 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대학과 협업하여 이 빅데이터를 분석토록 하고 그 결과를 다시 농촌진흥청 내부 연구자에게 피드백하여 소비자와 시장의 요구에 맞는 연구개발을 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컨대 버섯 신품종 개발에 있어 전 연령대를 통틀어 표고버섯에 대한 구매가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주부들이 표고버섯을 볶음요리뿐만 아니라 국물을 내는 용도로 주로 활용한다는 것을 빅데이터 분석으로 찾아냈다. 더불어 표고버섯 외관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 도출하여 이에 맞는 방향으로 신품종 개발을 준비 중이다.

작년에는 포도 신품종 개발에 있어 포도 구매에 더 많은 지출을 하는 고관여 소비자일수록 포도의 단맛만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새콤한 맛이 나는 포도에 대한 선호가 높다는 것도 빅데이터 분석으로 찾아냈고, 이에 적합한 프리미엄 포도 육종에 대한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와 농촌진흥청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김장용 절임배추를 구매하는 가구 수가 예전보다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찾아내고, 제조사와 유통업체로 하여금 절임배추 한 두 포기와 속 양념으로 구성된 1~2인 가구용 김장키트 개발을 제안했고, 관련 제품들이 출시되며 이 시장은 최근 수년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대학이나 기업에서 이런 빅 데이터를 구축하는 것은 어렵다. 정부 기관이 나서야만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다. 이 기반을 대학이 활용, 분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기업이 신제품으로 출시하며 소비자 만족과 함께 제품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트리플 헬릭스적 혁신 모델이 우리 농식품 분야에서 확산 중이다. 해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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