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쫙 벌린 드랙퀸에 “멋있다”... 다큐 ‘모어’의 시작

입력 2022-06-26 08:35 수정 2022-06-2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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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모어'의 주인공 모지민 씨 (사진작가 로디)
▲다큐멘터리 '모어'의 주인공 모지민 씨 (사진작가 로디)
망사 스타킹에 짙은 화장, 속옷 차림새로 다리를 쫙 벌린 채 고고한 표정을 짓고 있는 드랙퀸 아티스트 모지민 씨의 사진이다. 일본을 기반으로 ‘카운터스’ 등의 다큐멘터리를 내놓은 이일하 감독은 “신주쿠 LGBT촌”에서 그 사진을 처음 봤다고 했다.
“멋있다, 누구야?”
곁에 있던 일본인 사진작가 로디가 알려줬다. 사진 속 주인공이 한국인 모지민 씨라는 걸.

2018년 이 감독은 한국으로 달려왔고, 이태원의 지하 바에서 드랙퀸 공연하던 모지민 씨를 만나 촬영 승낙을 받았다. 모지민 씨의 활동명 ‘모어’는 그렇게 작품 제목이 됐다. '발레리노가 아니라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는 그의 삶이 카메라에 담기기 시작한 시점이다.

3년 넘는 제작 끝에 23일 정식 개봉한 다큐멘터리 ‘모어’를 연출한 이일하 감독을 22일 서울 사당 아트나인에서 만났다. 그는 “이태원 지하 바에 있던 드랙퀸을 햇살 밝은 대낮의 거리로 끌고 나와 한바탕 쇼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일하 감독 (엣나인필름)
▲이일하 감독 (엣나인필름)

‘모어’는 주인공의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퍼포먼스를 극대화한, 공연 뮤지컬 영화에 가까운 구성을 취한다. 이 감독은 “모어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통해 세상에 어떤 성명서를 제안해보자는 의미였다. 이 퍼포먼스가 없으면 작품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정의했다.

국회 앞 다리, 눈 오는 도심 등지에서 노출 있는 의상에 무대 화장을 갖춘 채 선보이는 격동의 춤사위는 이곳 사회를 살아가는 모지민 씨의 분투를 또렷하게 상징한다.

2019년 뉴욕에서 열린 스톤월 항쟁 50주년 기념공연 멤버로 발탁되는 과정은 그의 분투가 일종의 결실을 맺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감독은 이 과정에서 “음악이 정면에 나서서 싸워준다”고 표현했다. 민혜경의 ‘서기 2000년’,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이상은의 ‘담다디’ 등 90년대 초반 전후의 곡이 등장하는 한편, 최신 장르인 로파이(Lo-fi)를 연상케 하는 이랑의 음악이 다수 삽입돼 복합적인 인상을 남긴다. 오프닝과 엔딩에는 영화만을 위해 새롭게 쓴 록 음악도 들어갔다.

▲'모어' 스틸컷 (엣나인필름)
▲'모어' 스틸컷 (엣나인필름)

‘모어’는 20년간 함께한 연인, 영화 ‘헤드윅’ 주인공 배우 존 카메론 미첼 등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비추기도 하는데,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기를 보낸 모지민 씨를 괴롭혔던 친구가 카메라 앞에 등장하는 순간은 특히 흥미롭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눈길을 끄는 사연이 충분했음에도 이 감독은 “모어를 중심으로 한 영화적 재미를 위해” 편집 과정에서는 과감히 걷어냈다고 한다.

“털난 물고기. 모지민. 스무 해 동안 해온 드랙쇼를 하러 가는 날이면 ‘오늘도 수행하러갑니다’ 라는 마음의 총을 쥐고 집을 나선다. 내 뼛속의 구더기까지 보여줘야 하는 고된 일.”

음악과 퍼포먼스 사이로 모지민 씨가 직접 녹음한 문학적 내레이션이 반복적으로 어우러지는 어느 시점, 관객은 한 사람의 개성 있는 삶과 고민, 성장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때로는 공감을, 때로는 의아함을 느낀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이 감독은 ‘모어’에 정해진 메시지는 없다면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구름 사이에서 마치 솜사탕처럼 다가와 마음에 박히는 부분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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