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현실세계의 추악함이 마법왕국에”...정쟁에 흔들리는 디즈니

입력 2022-04-20 17:22 수정 2022-04-2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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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디즈니월드의 모습.(뉴시스/AP)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디즈니월드의 모습.(뉴시스/AP)

“신사 숙녀, 소년 소녀 여러분 디즈니 월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디즈니월드를 방문하면 들을 수 있던 안내 방송입니다. 그런데 지난여름 디즈니는 ‘신사 숙녀, 소년 소녀 여러분’이라는 문구를 ‘모든 꿈 꾸는 분들(dreamers of all ages)’로 바꿨습니다. 성 소수자를 위해 젠더 중립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노력은 디즈니를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게 했습니다. 문구 변경을 두고 진보와 보수 진영이 맞붙은 겁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생물학적 성이 아닌 젠더(사회문화적 의미의 성별)에 중점을 둔 디즈니의 변화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반면 보수 진영은 ‘디즈니 보이콧’ 운동을 벌이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죠.

디즈니는 정치가 극단으로 양분되는 흐름 속에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꿈과 동화 속에 존재했던 디즈니가 어쩌다 현실 세계로 소환된 걸까요?

디즈니를 현실로 소환한 ‘게이 언급 금지법’?

▲3월 22일 디즈니사의 직원이 회사 측의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입장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AP)
▲3월 22일 디즈니사의 직원이 회사 측의 성 소수자 문제에 대한 입장에 항의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AP)
최근 디즈니를 정치적 논쟁 한가운데로 끌어들인 것은 플로리다주가 얼마 전 시행을 확정한 이른바 ‘게이 언급 금지법’입니다. 이 법은 유치원~초등학교 3학년생에게 학교에서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주제로 한 수업과 토론을 금지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두고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의 찬반 논란이 커졌는데요. 이 불똥이 플로리다주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디즈니로 튀었습니다.

디즈니는 당초 해당 법에 대한 어떠한 견해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에 일부 직원은 파업과 시위를 하며 항의했습니다. 결국, 밥 차펙 월트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그동안의 침묵을 사과하고, 플로리다주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플로리다 주 의원들이 디즈니가 누리고 있는 각종 법적 혜택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보수 성향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55년간 디즈니에 줬던 특별자치권을 박탈할 수도 있다고 밝혔는데요. 리디 크리크 특별지구는 디즈니월드 리조트가 있는 지역으로 플로리다주가 1967년 특별지구로 지정해 디즈니의 자치권을 인정해준 곳입니다. 주 정부의 승인 없이 개발 사업을 하거나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특별지구 지위가 박탈되면 디즈니가 누리고 있던 연간 수백만 달러의 재정적 지원도 끊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진보진영도 디즈니가 너무 늦게 입장을 냈다는 이유로 디즈니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 놓인 겁니다.

창의성 억누를 수 있다는 비판도

▲영화 ‘블랙팬서’의 주인공 패드윅 보스만. (뉴시스/AP)
▲영화 ‘블랙팬서’의 주인공 패드윅 보스만. (뉴시스/AP)
현실과 거리를 두던 디즈니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을 표방하기 시작한 건 밥 아이거 전 CEO의 취임 이후부터였습니다. 2005~2020년 재임한 아이거는 배우 캐스팅은 물론 콘텐츠 서사에도 다양성과 평등의 가치를 강조하며 많은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영화 ‘블랙팬서’에서는 모든 배역을 흑인으로 캐스팅했고, ‘코코’, ‘모아나’ 등의 애니메이션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선보였습니다.

디즈니는 2019년 시작한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를 준비할 당시 PC적 관점에서 작품들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때 인어공주의 마녀 캐릭터를 어두운 색상으로 표현한 것을 두고 인종 차별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합니다. 또 피터팬의 후크 선장 캐릭터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강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디즈니 내부에서는 이런 행보가 창작자들의 창의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디즈니의 한 임원은 “정치적 올바름(PC)의 시선으로만 작품에 접근하는 것은 창의성을 억누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래도 저래도 욕 듣는다”...디즈니의 행보는?

▲(연합뉴스/AP)
▲(연합뉴스/AP)
디즈니는 모든 이들에게 두들겨 맞는 ‘동네북’ 신세가 됐습니다. 디즈니 플러스 시리즈 ‘로키’에서 주인공 로키는 양성애자로 묘사됐는데요. 한쪽에서는 주인공이 양성애자라는 이유로 비판받고, 다른 한쪽에선 로키가 양성애자임을 인정하는 장면이 너무 짧았다고 비판받는 식입니다.

NYT는 “현실 세계의 추악함이 ‘마법 왕국’으로 서서히 유입되고 있다”며 “디즈니는 누구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하려다 모두를 잃은 것 같다”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과 다양성을 작품과 회사 경영에 투영하려는 디즈니의 노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는 6월 개봉을 앞둔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에는 레즈비언 커플이 나오고, 7월 개봉하는 영화 ‘토르:러브 앤 썬더’에는 성 소수자(LGBTQ) 히어로가 나올 예정입니다.

취임 당시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밥 차펙 CEO는 지난달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다양성이 담긴 우리의 이야기는 바로 기업으로서 우리의 선언”이라며 “그리고 그것은 어떤 트윗이나 로비 활동보다 더욱 강력하다”고 태도의 변화를 보였습니다.

과연 디즈니는 ‘모든 꿈 꾸는 분들’을 행복하게 할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꿈과 마법의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소환된 디즈니가 나아갈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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