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가짜 연구소의 거짓 보도자료

입력 2021-09-01 15:00 수정 2021-09-04 15:57

산업부 김준형 차장

국내 1세대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를 기억하시나요?

한국전쟁에 미군 통역장교로 참전했던 그는 전쟁이 끝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천문학 박사를 마친 뒤 미국 NASA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었지요.

세간에 그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9년. 달 탐사선 아폴로 11호 발사 때였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앞다퉈 그를 모셔가기에 바빴고, 그의 이름 앞에는 ‘아폴로 박사’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NASA 출신의 한국인 천문학자는 사실상 그가 유일했으니까요.

그는 입담마저 유쾌했습니다. 주름 가득했던 미소는 ‘NASA 출신 천문학자’라는 편견을 성큼 밀어내고 우리 곁으로 다가오기도 했지요.

2010년, 조 박사가 별세하기 전까지 그를 자주 만났습니다. 전쟁과 무기, 미사일 그리고 자동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화수분' 같았습니다.

그와 마주했던 곳은 으레 서울 여의도에 자리한, 그의 작은 보금자리 ‘한국우주환경연구소’였습니다. 사람이 걸어 다닐 공간보다 책 쌓인 공간이 더 많았던 그의 연구소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개인 연구소였지만 제법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크고 작은 세미나를 여는가 하면, 흰머리가 가득한 학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기도 했지요.

당시만 해도 생경했던 ‘우주 방사능’에 관해 연구하고, 대안을 마련해 관련 학회지에 이를 게재하기도 했으니까요.

우리 사회에서 ‘민간 연구소’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름 그대로 연구원(硏究員)이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기관 또는 공간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포털 사이트에 연구소라는 검색어만 끼워 넣어도 셀 수 없이 많은 민간 연구소가 등장합니다. 단언컨대 기업이나 경제단체처럼 진정한 연구를 이어가는 게 아닌, 허울만 앞세운 가짜 연구소가 상당수입니다.

정책과 법률, 문화, 부동산, 음식 등 주제도 여럿입니다. 이들 모두가 연구소임을 자처하지만 무엇을 연구하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민간 연구소는 쉽게 세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영리와 비영리인지를 나누고, 물적 또는 인적 구성요건도 존재합니다. ‘연구소의 대표와 감사는 연구원을 겸할 수 없다’라는 규제도 있습니다. 관련 부처 등에 신고하고 허가번호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을 가볍게 생략하고 이름만 연구소인, 한 마디로 명함에 찍어 넣을 연구소가 수두룩하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을 분석한다"는 한 민간 연구소는 설립목적부터 기술시험입니다. 경제와 연관성이 없고, 경영 관련 전문가와 연구원도 '전무'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류가 가득한 기업 관련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사에 배포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사실 확인과정에서 오류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잘못된 수치와 통계 기준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면 답변을 회피합니다.

본지를 포함 ‘눈엣가시’ 같은 언론사를 배제해도, 보도자료 그대로 기사를 인용해 주는 통신사와 신문사가 많기 때문이지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체 행사를 개최하며 기업에 막대한 후원도 요구합니다. 본색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가짜 경제 연구소들의 오만과 안일함은 언젠가 들통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 내막과 거짓에 대해 취재를 시작했으니까요.

이 글을 보고서 짐짓 놀랐다면 당신이 바로 이 논란의 ‘장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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