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랑종’은 현실이다

입력 2021-08-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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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학교 명지병원 외래교수

영화 ‘랑종’을 보았다. ‘님’이라는 태국 깊은 산골의 무당은 ‘바얀신’을 섬기며,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해결해 주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의 강인하고 무덤덤한 인상과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큰 신망을 주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위기가 찾아온다. 신내림 증상을 보이는 조카딸을 치료하면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자신감과 믿음은 서서히 흔들린다. 급기야 다른 무당에게 도움까지 청하게 되고, 그녀가 평생 의지하고 믿던 ‘바얀신’의 신상이 파괴된 모습을 목격한 후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믿음이 무너진 그 마을에선 이후 아비규환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그녀가 죽고 난 후, 드러난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의 바얀신에 대한 믿음을 의심하고, 사실 한 번도 자기가 느끼고 있는 그 존재가 바얀신이라고 확신해 본 적 없다”고 고백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믿음은 다양하다. 신비주의, 종교, 과학적 합리주의, 이데올로기 등등. 그러나 그 믿음이 종종 ‘랑종’의 한 작은 마을에서와 같이 의심되고 무너질 때, 사람들의 마음에 큰 혼돈과 불안을 일으키게 되곤 한다.

1980년대 말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이 붕괴했을 때, 마르크스와 마오쩌둥을 신봉하던 형이 “이건 말이 안 돼”라고 중얼거렸던 일. 유방암으로 부인과 딸을 연이어 보낸 어느 환자가 모태신앙을 버리게 된 일.

믿음은 사람에게 강력한 희망과 추진력을 주는 만큼 같은 강도의 절망과 우울감을 주기도 한다. 이것이 믿음의 이중성이고 역설이다. 믿음이 없어진 삶에서 ‘실존주의’와 ‘포스트 모더니즘’이 탄생했다. 앞으로 우리는 벌거벗겨진 실존으로 불안에 떨면서 여생을 살아야 할까?

자상하고 가정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역시 자신을 매우 사랑하고 믿음직한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한 여성 환자가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 배우자의 외도를 목격한 후 큰 충격을 받고, 이후 다시는 그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편, 평생을 바람피우던 아버지, 그와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게 된 어떤 여성이 오히려 강인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진료실에서 간혹 만나게 된다.

믿음이 무너진 삶에서도 우리는 ‘랑종’에서와 달리 삶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끈기 있게 살아가곤 한다. 바로 이것이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은 비결이 아닐까.

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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