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惡의 카르텔이 웃는다

입력 2021-06-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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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우 금융부장

‘빙산의 일각’

어떤 일의 대부분이 숨겨져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극히 일부분(一角)에 지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주로 바람직하지 못한 일의 경우에 쓰인다. 국어사전은 이같이 정의한다. 금융당국은 매년 사채시장 실태조사는 발표한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시각이 가장 적합하게 통용되는 한국 경제의 대표적인 ‘응달’로 꼽힌다.

2012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복지재원 마련 방안으로 “지하경제 활성화”를 언급해 논란이 됐다. 지하경제는 정부의 감시망을 피하는 자금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금융취약층이 주로 이용하는 불법 사채(私債)시장이 지하경제인 것이다. 표면적으로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가장하면서 정부의 관리·감독을 피하는 시장이다. 지하경제 규모와 그로 인한 피해 범위를 담은 정확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

지금은 시장의 인식에서 멀어져 가고 있지만, 서울 중구 명동은 거대한 지하경제의 코어(Core)였다. 과거 수백조 원대에 이르는 시중 유동자금의 흐름을 주도하는 한국 경제 응달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캐피털, 컨설팅, 투자 등의 간판을 내건 사채 업소들이 즐비했다. 최근에는 사채·대부업종이 아닌 일반 사업을 동시에 등록하면서 △상사 △무역 △개발 등의 회사명을 갖기도 한다. 여러 형태의 사채 업소가 등장하고 있지만, 고금리와 거액의 수수료를 요구한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정부는 ‘대금업법(현 대부업법)을 만들면서 사채시장의 건전화를 유도했었다. 사업업자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이자수익을 얻지 못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그러나 사채업자들의 폭리는 여전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채업자가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그들의 수익도 높아지는 것이다. 비싼 값으로 자금을 조달하다 보니 그만큼 비싸게 돈을 빌려주는 사업 구조 자체가 큰 리스크다. 떼이는 곳도 많고, 추심비용 같은 영업비도 더 드는 돈장사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사채시장에 대한 공신력이 확고한 사실관계를 파악한 자료와 기관은 없다. 사채시장은 과거 시중은행 본점이 몰린 서울 명동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현재는 강북의 을지로, 퇴계로, 충무로를 비롯해 강남역 주변, 테헤란벨리 등지로 확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채업체의 메카는 ‘명동’으로 통한다는 것이 속설이다. 명통 사채 시장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시장 안에서 어떠한 사업을 하고 있는지, 사업 규모와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

불행하게도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이야기들은 풍문에 지나지 않는다. 사채시장은 각 업소들이 긴밀히 연결돼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이 많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서열이 형성된다고 한다. 일종의 피라미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 피라미드 정점에는 소수의 ‘전주(錢主)’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수사기관이나 금융당국도 이들의 신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만의 카르텔이 철저한 구조다.

다음 달부터 이들에게 족쇄가 더 죄어진다. 법정 최고금리를 연 20%로 내리는 대부업법 시행령이 내달 7일부터 시행된다. 서민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과거 2002년 연 66%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최고금리를 억누르는 것이 대부업체의 대출 중단 등으로 이어져 저신용자의 피해를 키울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저신용자는 최대 860만 명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걱정인 것은 정부가 정한 이 가격(금리)으로는 수지를 못 맞춘다며 문 닫는 대부업체가 급증한다는 점이다. 이용자들이 불법 사채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불법 사채시장 이용자가 물어야 하는 금리는 연 110%(2018년 기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높은 금리=악(惡)’이란 인식하에 인위적으로 이자율을 낮추는 정책이 사채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두렵다. ac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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