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원호의 세계경제] 중국이 한미정상회담 비판 자제한 까닭

입력 2021-06-07 05:00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지난 5월 21일 한·미 정상은 워싱턴에서 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특징은 한미동맹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이다. 양국 정상은 양국 관계가 “지역 및 세계 질서의 핵심축”이라고 밝혔다. 한미동맹이 기존의 한반도를 넘어선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됐음을 밝힌 것이다.

이와 동시에 양국 정부가 현시점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엿볼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 바이든 정부는 대중 견제다. 한국은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합의를 공동성명에 넣는 데 성공했고, 미국은 쿼드, 대만, 첨단기술 협력을 공동성명에 넣는 식으로 맞교환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미 간의 미팅 이후 조용하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논조의 칼럼을 월스트리트저널에 게재했다. 그러나 필자는 한미정상회담 이후 조용하다는 것을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한다. 첫째는 한미정상회담 결과가 그만큼 교묘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중국이 반응을 자제했다는 점이다.

직전에 있었던 미일정상회담 공동선언문과 달리 한미정상회담 공동선언에서는 ‘중국’이라는 직접적인 언급 없이 거의 모든 대중 견제 내용을 담아냈다. 내용만 보면 미국이 대중 견제에 한국의 동조를 이끌어냈다고 해석할 수 있고, 표현에 주목하면 한국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원론적인 동조를 보였다고 해석할 만하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영문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도 한국이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원하는 바를 얻어내며 미중 문제에 있어 한국의 원칙을 지켰다”고 평가할 정도로 교묘했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첫째는 지정학적 우려다. 인도태평양 구상과 신남방정책의 연계로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적 틀에 한국이 동참했다는 판단이다. 쿼드 동참은 아니지만 미국은 한국을 미국의 전략적 구상에 제도적으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으며, 대만과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구상하는 구도에 한국을 동참시켰다는 점을 중국은 우려한다. 또한 한·미·일 삼각협력과 한미 미사일지침 종료로 동북아 군사력 균형을 깰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한다.

둘째는 경제적 우려다. 한국의 4대 기업으로 하여금 미국에 거액을 투자하게 한 것이,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을 미국이 흔든 것이라고 본다. 또한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기술패권 경쟁으로 발전해가는 상황에서 한·미 공동성명에 담긴 반도체, 친환경 전기차(EV) 배터리, 전략·핵심 원료 협력과 핵심기술 수출통제 및 투자심사 강화 등의 협력이 향후 어떻게 발전할지 중국은 안보 분야보다 더욱 주목할 가능성이 높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언급처럼 중국도 이번 공동성명이 중국을 겨냥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직설적 비판을 자제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고립된 중국 외교가 직면한 어려움이다. 그간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받는 상황 속에서 유럽과의 협력에 힘을 쏟아왔다. 그런데 최근 유럽에서 ‘중국 이탈’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유럽의회는 5월 20일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인권 문제를 이유로 EU-중 포괄적투자협정의 비준 동결을 결정했다. 동유럽에서도 중국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 눈에 띈다. 리투아니아는 5월 22일 중국과 중동유럽의 경제 협력 틀인 ‘17+1’에서 이탈했다고 선언했다.

2012년, 당시 ‘16+1’로 시작된 중국-중동부 유럽 국가 간의 경제협력 추진기구(China-CEEC)는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된 2020년을 제외하고 매년 정상회의를 열어왔다. 하지만 올해 2월 회의에는 라트비아, 불가리아, 슬로베니아 등 6개국 정상이 불참하며 사상 최저 출석률을 보였다. 이번 회의가 화상으로 진행된 회의였다는 점, 중국 시진핑 주석이 직접 참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도 유럽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인식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비난으로 한국마저 반중으로 돌아서게 만드는 것은 중국도 피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중국이 아쉬움 정도로 반응을 자제한 배경이다.

흥미롭게도 이를 인정이라도 하듯 시진핑 주석은 며칠 전 중국 공산당 정치국 30차 집단 학습에서 “중국의 종합 국력과 국제적 위상에 걸맞으며 개혁 발전에 유리한 외부 언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대외 홍보 강화를 주문했다. 신뢰·사랑·존경받는 중국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국은 소국(小國), 중국은 대국(大國)이라는 근본적인 패권적 인식을 버리지 않고, 대외 이미지를 포장하는 것만으로 중국의 외교 고립이 해결될까. 필자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소국은 대국에 대항해서는 안 된다.” 2012년 남중국해 문제로 필리핀, 2016년 사드 문제로 한국, 그리고 2021년 리투아니아의 CEEC 탈퇴에 중국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입장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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