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첫걸음부터 삐걱거린 현대차 사무노조

입력 2021-04-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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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산업부 차장

한때 만나는 사람마다 혈액형을 묻는 게 유행일 때가 있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는, 허울 좋은 핑계도 늘 따라다녔지요. 묻는 것 자체도 참 자연스러웠습니다.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지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RH식 혈액형 몇 가지로, 전 세계 50억 인구의 성격을 갈라놓는 방식이었으니까요.

직업의 특성상 먼저 의심하는 게 익숙해진 탓에, 묻고 또 묻는 게 버릇이 된 탓에 혈액형별 성격은 재미로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요즘은 혈액형 대신 ‘자기 보고식 성격유형 지표’를 묻는다지요. 이른바 ‘MBTI (Meyers Briggs Type Indicator)’라고 합니다. 그나마 혈액형보다는 종류는 많다지만, 이 역시 몇몇 기준으로 사람을 가르고 편견을 쌓아 올리는 행태 가운데 하나입니다.

최근 현대차그룹에 사무ㆍ연구직 노조가 생겼습니다. 이들은 ‘인재존중’이라는 수식을 앞세워 조합 설립 절차에 나섰습니다.

이들의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의 매출액을 기록했음에도 생산직 노조가 주도한 임협에서 원하는 만큼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라며 "생산직 노조가 전년보다 후퇴한 수준의 기본급과 성과급에 합의함에 따라 사무직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제 우리의 목소리를 내겠다”라고 합니다.

성과에 비례하는 공정한 보상을 중시하는, 이른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생산직 노조와 차별화된 사무직 노조를 설립하겠다는 뜻입니다.

현대차 사무직 노조에 가입 의사가 있는 직원 대다수는 입사 8년 차 이하 젊은 직원들이며 노조 위원장은 20대 현대케피코 직원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무직 노조는 객관성과 논리적인 타당성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사무ㆍ연구직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새로운 창구가 필요하다고 느껴 별도 노조 설립을 결정했다”라며 “의사결정 시 통계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이 기존 노조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노조 역시 특정 집단의 목소리가 전체 근로자를 대변할 수 없습니다. 자연스레 업무 특성에 따라 근로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출발부터 논리와 당위성이 떨어지는 주장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앞으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우려도 나옵니다. 그들의 발언과 행동 곳곳에 여전히 빈틈이 많이 보였기 때문인데요.

예컨대 “지난해 현대차가 역대 최고 수준의 매출액을 기록했지만, 생산직 노조가 주축이 된 임금 협상에서 노사가 전년보다 후퇴한 수준의 기본급과 성과급에 합의했다. 이에 사무직 직원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진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현대차 노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에 달했을 때 본격적인 임협을 시작했습니다. 이례적으로 자동차 업계의 위기를 공감해 이 회사 노사는 11년 만에 임금 동결에 합의했습니다.

그렇게 임금협상이 끝난 게 9월이었습니다. 지난해 현대차의 판매실적은 당연히 올해 1월에,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은 3월에서야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을 간과한 사무ㆍ연구직 노조는 당위성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사무연구직 노조는 의사를 결정할 때 통계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시작부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과 다르다”라며 소속과 집단의 차별화를 내세우는 게 아닌, 현대차는 물론 노동계 전반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더욱 합리적인 조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자칫하면 다른 회사의 사무직 노조 출범까지 당위성을 잃을 수 있으니까요.

jun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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