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빚투시대의 허상에서 깰어날때

입력 2021-02-08 06:00 수정 2021-02-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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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 자본시장부장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소재는 ‘빚’이다.

“전 재산이 혈관 속을 흐르는 피뿐”이라고 고백하는 바사니오는 구혼을 위한 여행비용이 다급했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빌리려 하자 보증을 요구했고 친구인 해운업자 안토니오가 나섰다.

샤일록은 기한을 어기면 1파운드의 생살을 도려내도 좋다는 서약을 요구했고 안토니오는 운항 중인 선박이 도착하면 돈이 넘친다며 이를 거만하게 수용했다. 선박이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는 사고로 그는 기한을 지키지 못했고 샤일록은 서약 집행을 요구했다.

소설 속 재판관으로 나선 포샤는 명판결을 내린다. “계약대로 살덩이 1파운드를 가지시오, 다만 그걸 잘라낼 때 피를 단 한 방울만 흘려도 당신 땅과 재물은 베니스 국법에 따라 몰수될 것이오.” 샤일록은 집행을 포기했다.

결국 권선징악 판타지로 끝난다. 하지만 초반의 돈거래는 현실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빚의 위험이 전혀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주식시장을 제 집처럼 누비는 동학개미를 보면 소설 속 안토니오를 연상케 한다.

코스피 지수가 3000에 안착할 정도로 활황세를 이어가며 ‘묻지마 빚투’가 만연해 있다. 지난해 은행권 가계대출은 988조8000억 원이다. 연간 사상 최대인 100조 원 넘게 늘었다. ‘벼락거지(집값이 오르는 바람에 갑자기 거지 신세가 된 무주택자)’ 신세가 된 서민들과 ‘상승장에서 나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에 빠진 2030세대들이 묻지마 투자에 나선 결과다.

‘주식세끼(1일 3회 거래)’, ‘오치기(하루 수익 5만원)’, ‘주린이(주식하는 어린이)’등등의 용어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취업난에 낙담한 청년들은 은행 통장보다 주식계좌를 먼저 튼다. 군 내무반마다 스마트폰으로 주가 흐름을 보면서 일희일비하는 ‘병정개미’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키움증권에서 20·30세대가 새로 만든 증권 계좌는 117만 개로 전년(25만 개)보다 5배 가까이 증가했다. 빚내서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 융자 규모는 사상 최대치(21조 원)로 늘었다.

직장생활의 풍경도 바꿔놨다. ‘임포자’(임원을 포기한 사람)를 넘어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도 생겨났다. 경제적 자립을 통해 늦어도 40대 초반에 은퇴하는 게 목표인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젊은 고학력ㆍ고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퍼졌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저축’으로 은퇴 자금을 마련하려 했다면 한국의 파이어족은 주식투자로 은퇴 자금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주식투자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시장참여자들의 모습과 믿음이 광기에 가까워 보여 걱정스럽다. 전망이 어두운 비디오 게임 업체 주식이 온라인 커뮤니티발 작전에 폭등·락한 ‘게임스톱 사태’에 국내 서학개미가 끼어든 상황이다.

이 시대 투자 철학이 ‘더 큰 바보 이론’(가격이 본질 가치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비이성적 믿음·기대로 형성된다고 보는 이론)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경고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는 최근 코스피지수 급등에 따른 ‘거품 논란’을 두고 “과도한 레버리지에 기반을 둔 투자 확대는 예상치 못한 충격에 따른 가격 조정으로 투자자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의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버블’은 버블 안에 있을 때는 아무도 모른다. 거품이 터지고 나서야 ‘그게 거품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지난해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버블: 부의 대전환’이 경고한 “버블에 올라타거나 버블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건 대다수 투자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어 볼 때다. k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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