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과잉신념은 인지기능을 왜곡한다

입력 2021-01-1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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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부국장 겸 산업부장

변화막측(變化莫測)한 시대다. 대홍수처럼 쏟아지는 정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포함해 모든 정치·경제·사회 이슈에 백가쟁명식 논쟁을 촉발해 여론을 어디로 몰고 갈지 예측하기 힘들게 한다.

IBM에 따르면 이미 2017년 전 세계에서는 쏟아지는 자료의 양은 하루에만 2.5퀸틸리언(quintillion) 바이트에 달했다. 퀸틸리언은 조의 1만 배, 즉 100경이다. 이 정도의 정보를 저장 용량 650메가바이트인 CD에 담으려면 무려 38억 개가 필요하다고 한다. 문제는 인간의 뇌가 쏟아지는 정보량의 100만분의 1인 3테라바이트(terabyte) 정도밖에 저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이 간극은 정보 습득 과정을 지극히 단순화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이해하지 못했지만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이유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의 정보 획득은 정권 마음먹기에 따라 여론 조성에 악용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지난달 통일부는 국제사회 일각에서 비판하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미국 비영리단체인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의 칼 거쉬먼 회장 발언을 짜깁기 편집해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통일부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설명자료에 “거쉬먼 NED 회장도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대북전단 살포가 효과적인 정보유입 방법이 아니라고 밝힌 바 있다”고 썼다.

하지만 거쉬먼 회장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전단 규제에 관해 비판적 태도를 보였는데 통일부가 앞뒤 문맥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필요한 문장만 뽑아 썼다. 결국, 거쉬먼 회장은 한국 통일부가 대북전단 활동과 관련한 자신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잘못 사용했고, 이에 대해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대북전단금지법에 관한 호의적 국제여론을 조성하겠다는 외교부도 오역 논란을 빚었다. 외교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지난달 16일(현지시간) CNN방송 인터뷰 내용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대북전단에 대한 북측의 무력 대응을 비판하는 취지의 사회자 발언을 오히려 한국 정부의 대북전단금지법에 동조하는 것처럼 소개했다.

두 부처 모두 의도적인 오역이나 짜깁기 편집이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이 뒤늦게라도 밝혀지지 않았다면 시민들은 꼼짝없이 왜곡된 정보를 체득했을 것이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정보의 양은 사실에 기반을 둔 정보와 그렇지 않은 오보를 가려내기 힘들게 한다. 정보화시대에 들어서 착각과 오만에 빠진 ‘가짜 전문가’가 넘쳐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단적인 예로 스마트폰에서 기사 제목만 보고 ‘뒤로 가기’를 터치했음에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도 그 기사 읽어서 알고 있어’라고 답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현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이 맹점을 잘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말한 ‘고귀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도 봤다.

하지만 통일부 행보를 보니 이 판단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통일부는 14일 제318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어 이산가족 실태조사 등 7건(약 271억 원)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을 의결했다. 불과 이틀 전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에서 ‘당대회 기념 열병식을 정밀추적했다’는 남측을 향해 “특등 머저리들”이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통일부는 북한의 8차 당대회 분석자료를 통해 “(북한은) ‘새로운 길’, ‘3년 전 봄날’,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 등을 언급하며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설명했다. 이쯤 되면 조선 시대 사금파리 하나로 고려청자 10개 정도는 뚝딱 빚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과잉 신념과 맹목적 믿음은 인지기능을 왜곡하고 도덕성까지 갉아먹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을 놓고 재계와 소통했다는 정부와 여당이 뒤로 돌아서기만 하면 딴소리하는 것도 십분 이해된다. 그러나 과잉 신념에 매몰된 정부를 보는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vicman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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