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배진건 박사 “신약개발의 꿈, 실패 쌓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입력 2020-11-13 07:00 수정 2020-11-1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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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 분위기 문제…‘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단’ 출범 후 기술이전 등 성과

▲배진건 이노큐어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이 3일 경기도 성남 분당구 판교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배진건 이노큐어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이 3일 경기도 성남 분당구 판교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우리는 실패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당장 성공하지 못해도 노력이 밑바탕이 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믿음으로 실패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

‘가성비’와 ‘효율성’,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에 10년 이상의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드는 ‘신약개발’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숙제일까.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한 신약개발, 쏟아부은 시간과 비용 때문에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임상의 유혹, 이 모든 것들은 신약개발의 꿈을 멀어지게 한다. 신약개발 외길 인생을 걸어온 배진건(69) 박사가 말하는 신약개발 성공을 위한 조건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임상의 유혹에서 벗어나 실패를 쌓아가는 자세만이 신약개발의 꿈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신약개발 또 한번의 변곡점 필요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끌 핵심축’, ‘차세대 먹거리’, ‘K브랜드의 선봉장’ 등 제약·바이오업계에 붙는 수식어는 몇 년 사이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K방역, K의료, K바이오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백신은 물론 완전한 치료제가 없는 무방비 상황이 계속되면서 제약·바이오업계의 도약과 가능성에 이목이 쏠린다.

경기도 성남시 이노큐어테라퓨틱스에서 3일 만난 배진건 박사(이노큐어테라퓨틱스 수석부사장)는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성장에 또 한번의 변곡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배 박사는 1986년부터 23년간 미국 쉐링프라우 연구소에서 알레르기·염증, 종양 생물학 분야 수석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다 2008년 귀국해 중외제약 연구 개발총괄전무·C&C 신약연구소 대표, 한독 연구개발 상임고문(2011), 한국아브노바 연구소장(2016), 우정바이오 고문(현재) 등을 거치며 끊임없이 신약개발에 매진해왔다. 이노큐어테라퓨틱스는 현재 표적단백질 분해기술인 프로탁(PROTAC)을 이용해 신약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귀국 후 그가 제약·바이오업계에서 가장 먼저 느꼈던 점은 폐쇄적인 분위기였다. 그는 “가장 의아했던 업계의 모습은 협업하지 않는 것이었다. 후보물질 하나를 정할 때도 비밀리에 진행했다. 화학, 바이오 등 여러 전문가가 의견을 주고받으며 협업하면 더 좋은 결과물이 탄생할 텐데 비밀이 샐까 봐 서로 공개하지 않더라”고 말했다.

이런 폐쇄적인 분위기는 2011년 ‘범부처전주기신약개발사업단’ 출범 후 달라졌다.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3개 부처는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정보를 공유했다. 후보물질 단계부터 임상시험에 이르기까지 신약개발 전 주기를 지원했고, 기초 분야의 학회 및 다양한 워크숍을 통해 산학연 협력 체계도 마련했다. 배 박사는 이때부터 꼭꼭 숨기던 것을 오픈함으로써 대한민국 신약 개발이 전환기를 맞게 됐다고 본다. 그는 “범부처 사업단을 통해 협력한 뒤 기술수출 사례가 늘어 경쟁력이 높아졌다”며 “출범 후 9년간 지원한 162개 과제 가운데 49개가 기술이전에 성공했다. 총계약 금액은 약 13조 원이나 됐다”고 설명했다.

국산 신약개발 성공하려면 ‘인력 부족’ 극복이 급선무

폐쇄적인 문화에서 협력의 문화로의 전환은 이뤄냈지만, 배 박사는 신약개발 성공을 위해 또 다른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바로 ‘인력의 벽’이다. 그는 지난해 쓴 저서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에서 “신약개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박사가 말하는 기본은 ‘Biology, Analysis, Science, Innovation, Chemistry’의 첫 글자를 딴 ‘BASIC’이다. 생물(Biology)과 화학(Chemistry) 양대 축이 기둥으로 버텨주고, 기둥의 밑바닥은 과학(Science)이 든든하게 받쳐주며, 연구·개발의 동향, 현재 상황과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Analysis)하고 창의적인(Innovation) 사고가 곳곳에 스며 있을 때 신약개발이라는 목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것.

그는 “그간 바이오 기업은 참 많아졌는데 임상에서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개발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후보물질을 찾는 연구를 넘어 임상에 들어가기 전 임상 물질을 만드는 등 충분한 개발 경험을 가진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임상시험에 들어가기도 어렵고 들어가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배 박사는 “인재 수급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농담 같지만 대치동 학원에서 강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바이오, 화학 분야에 매력적인 길이 있다는 걸 알려줘 이 분야를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K바이오 위상 높인 진단기술, 신약개발 위한 임상시험에 활용해야”
코로나19 확산 이후 K방역·K바이오의 활약은 국내 업계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배 박사는 진단키트 경쟁력을 신약개발로 이어가기 위해 우수한 진단기술을 임상시험에 활용하는 ‘협력’이 강조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배 박사는 “K바이오 위상, 진단부문의 경쟁력을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진단키트는 사이클이 빠르게 변해 벌써 단가가 떨어지고, 미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진단키트가 나오면서 우리나라만의 경쟁력을 찾기가 어려운 분야가 되고 있다”며 “우수한 진단기술을 임상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약개발에서 바이오마커를 활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큰데 그래서 진단회사와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배 박사는 메드팩토와 테라젠이텍스 사례를 들었다. 유전자 분석·진단 전문기업인 테라젠이텍스는 2013년 기업분할 방식으로 항암 신약 개발기업 메드팩토를 설립했다. 두 회사는 신약개발에 필요한 바이오마커를 선별하고, 유전체 분석 분야에서 협업해 비용을 절약하고 신약개발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 배 박사는 “메드팩토가 테라젠이텍스의 도움을 받아 신약개발을 하는 것처럼 진단 기술을 활용해 유전 정보를 가려내고, 임상시험에 필요한 기술을 활용해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약개발, ‘사람을 살린다’는 철학 기반해야 ’
길고 험난한 신약개발의 A부터 Z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협력’이었다. 배 박사는 “신약개발은 한마디로 오케스트라다. 지휘자가 있지만 각자 전문 분야에서 제대로 음을 낼 때 화음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신약개발에 필요한 전문 인력들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력할 때 신약개발의 꿈이 가까워진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직 현악 4중주에 불과하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인력이 모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신약개발에 대한 마음가짐도 강조했다. 배 박사는 “약값을 높게 책정할 수 있는 것, 빨리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것, 이런 식으로 먼저 계산하고 신약개발을 시작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길고 긴 여정을 걸어가려면 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힘들어도 참을 수 있는 철학과 목표가 있어야 버틸 수 있다”며 “간혹 어렵게 들어간 임상시험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 그간 들인 비용과 시간이 아까워서 불가능을 인정하지 않고 마치 가능한 것처럼, 어떻게든 가능하게끔 하려고 한다. 그게 바로 ‘임상의 유혹’인데 그걸 떨쳐버려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내 노력이나 희생이 밑바탕이 돼 언젠가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믿음으로 실패를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미선 기자 o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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