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말로 하는 통화정책

입력 2020-09-01 18:32 수정 2020-09-0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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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현 기획취재팀장 겸 자본금융 전문기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점 하나를 찍고 지움에 따라 님이 되기도, 남이 되기도 한다는 노랫말도 있다. 이렇듯 말과 글은 인간관계 속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비록 인간사뿐만은 아닐 것이다. 말과 글은 주요 정책수단 중 하나로 경우에 따라서는 큰 비용을 치른 경제정책보다도 되레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런 정책을 잘하는 대표적인 곳이 한국은행도 인정한 미국 연준(Fed)이다. 실제 2016년 5월 초 한은이 발표한 ‘제로금리하한에서 미 연준의 커뮤니케이션 효과 분석’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제로금리 하한기간에서도 미 연준의 커뮤니케이션은 장기채권 수익률에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 내렸다. 이 보고서는 2008년 12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결문 발표와 연준 의장 의회발언 등을 분석한 것이다.

한은도 그 어느 때보다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떨어지기 시작한 한은 기준금리가 벌써 0.50% 수준에 와 있는 데다, 코로나19는 2차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처럼 제로금리는 아니지만 우리 경제가 소규모 개방경제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더 내릴 수 없을 만큼 내린 실효하한에 와 있다는 점에서 한은이 추가로 내놓을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

한은 역시 사실상 이를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7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여러 금통위원들이 다양한 이유로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 금통위원은 “지금은 커뮤니케이션이 매우 중요한 때”라며 “특히 통화정책의 여러 파급 경로 가운데 자산가격 경로나 기대 경로는 부동산 문제와도 연결되는 만큼 관련 커뮤니케이션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위원도 “국고채 직매입(단순매입)의 목적 등에 관해 시장과 원활히 커뮤니케이션하는 등 정책 효과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최근 한은 커뮤니케이션은 매끄럽지 못한 모습이다. 지난달 24일과 27일 각각 있었던 임시국회 업무보고와 기준금리 결정 금통위가 대표적 예다. 채권시장의 한 참여자는 “이번(8월) 금통위는 너무 생뚱맞다. 성장률은 낮춰 놓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한은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8월 24일이나 27일이나 이주열 한은 총재는 일괄적으로 같은 말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은 24일은 비둘기파(통화완화)적으로, 27일은 매파(통화긴축)적으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더 큰 비둘기를 원했던 시장의 욕심일 수 있겠지만, 이 역시 거창한 말로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를 예상하지 못한 한은의 실수다.

8월 31일 진행된 국고채 단순매입도 혼선을 빚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 총재는 27일 기자회견에서 “당장 수급불균형에 따른 시장불안 발생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당장 단순매입을 실시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었다. 반면, 한은은 그 하루 뒤인 28일 1조5000억 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31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다 보니 올 들어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단순매입과 달리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모습이다. 그나마 쓸 수 있는 카드 하나를 날린 셈이다.

그 사이 국고채 3년물은 0.9%, 10년물은 1.5%를 돌파하며 각각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채권금리가 속절없이 오르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연준의 평균물가목표제(AIT) 도입 영향도 있었겠지만, 대내적으로는 8월 금통위 실망감에 더해, 4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가능성 등에 따른 수급 부담이 맞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국인의 국채선물 대량 매도도 더해지고 있다.

한은은 올 들어 6조 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했다. 한은이 단순매입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2001년 이후 연간 기준 벌써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총재도 우려했듯 정부는 국채발행을 통해 재정적자를 늘리고, 중앙은행은 국채를 매수해 통화량을 늘리는 소위 ‘재정의 화폐화’ 가능성도 염려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필요할 경우 국고채 단순매입 등 정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 하지만 쓸 카드가 많지 않은 지금, 말로 하는 통화정책을 보다 세련되게 가다듬는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kimnh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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