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박정진 한국수제맥주협회장 “수제맥주 전성시대…글로벌 시장 진출도 꿈꿔요”

입력 2020-07-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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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규모·독립성·지역성이 크래프트맥주 정신”…최근들어 거대자본 인수 사례, 다양성 훼손 우려

▲박정진 한국수제맥주협회장은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2024년까지 전체 맥주 시장의 10% 가까이 차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정진 한국수제맥주협회장은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2024년까지 전체 맥주 시장의 10% 가까이 차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산 수제맥주가 말 그대로 물을 만났다. 지난해 불거진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일본 맥주는 편의점, 대형마트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 빈자리를 국산 수제맥주가 채웠다. 올해는 술에 매기는 세금 방식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어 값비싼 재료를 넣은 다양한 수제맥주가 탄생했고, 동시에 가격 경쟁력도 챙길 수 있었다. 때를 만난 수제맥주는 코로나19 여파로 홈술 트렌드까지 타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수제맥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이 때 올해 4월부터 한국수제맥주협회장을 맡게 된 박정진(45) 진주햄·카브루 대표는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협회 전망치보다 높게 평가했다. 한국수제맥주협회는 2003년 국세청의 설립인가를 받아 탄생했다. 박 회장은 “협회에서는 수제맥주 시장이 향후 5년간 최소 연평균 30%씩 성장할 것으로 보는데 이렇게 성장하면 수제맥주는 2024년 약 3000억 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전체 맥주 시장의 6~7%를 차지할 것”이라며 “이는 보수적인 수치이고, 개인적으로는 전체 맥주시장의 10% 가까이 차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제맥주의 존재감 배경에는 ‘다양성’이 있다. 맥주 맛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술을 즐기는 문화 역시 다양해졌다. 주 52시간제로 시작된 워라밸 문화와 회식의 감소, 홈술 트렌드 확산으로 유흥 시장은 활기를 잃은 대신 소매 시장은 성장세다. 박 회장은 “지난해 수제맥주 시장 양상을 보면 이전과 다르다. 펍, 음식점 등 유흥 시장에서 거의 성장하지 못했고 편의점, 대형마트 등 소매 시장 성장세가 두드러졌다”며 “이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음주 문화가 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접근성이 좋은 편의점, 대형마트 등에서 쉽게 수제맥주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수제맥주의 강점인 ‘다양성’은 독보적인 경쟁력이 됐다. 박 회장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수입 맥주는 ‘라거’ 맥주로, 결국 우리나라 소비자는 브랜드만 다른 같은 종류의 맥주를 편식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에 반해 수제맥주 회사들은 IPA, 페일에일, 스타우트 등 다양한 스타일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고,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맥주 등 다양한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이런 다양성은 소비자에게 취향에 따라 골라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을 주고, 일반 맥주와 차별화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수제맥주의 다양성은 종량세 전환으로 더욱 힘을 받고 있다. 박 회장은 “종량세 전환으로 수제맥주 업체들은 더 다양한 제품을 출시할 수 있게 됐다. 비싼 가격 때문에 세금이 높아질 수밖에 없던 홉이나 과일 같은 재료를 넣은 수제맥주를 선보이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시장 진출, 명과 암 동시에 존재 = 수제맥주의 특징인 ‘다양성’이나 ‘개성’은 한국수제맥주협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협회는 소규모(연간 1만㎘ 미만 생산)·독립성(주류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의 지분율 33% 이하)·지역성(국내 생산 비율 80% 이상)을 회원사 자격으로 규정해 놓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규모 자본이 수제맥주를 인수하는 사례가 늘면서 수제맥주의 개성이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패션 대기업 LF는 2017년 수제맥주 제조·유통업체 ‘인덜지’를 인수했고, 오비맥주는 2018년 자회사 ZX벤처스를 통해 수제맥주 회사인 ‘핸드앤몰트’를 사들였다. 박 회장이 대표로 있는 진주햄도 2015년 수제맥주 기업 ‘카브루’를 인수하며 시장에 발을 들였다.

박 회장은 대규모 자본이 수제맥주 시장에 진출할 때의 명과 암은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무분별한 M&A는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대기업이 특정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다. 역량 있는 회사가 진출해 산업 규모를 키우고,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을 수 있다”면서도 “대기업들이 수제맥주 산업에 무차별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여전히 업계 구성원들이 두려워하는 사항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실제로 미국 시장에서는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 거대 자본이 대대적인 M&A로 진입하면서 제품 다양성이 줄었고, 효율 위주의 경영으로 소위 말하는 ‘크래프트 맥주 정신’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던 선례도 있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기존 업체들이 일정 수준의 자생력을 갖출 때까지 정부의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이 이끄는 진주햄 역시 ‘크래프트 맥주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인수 당시 카브루는 경기도 가평에 15명의 직원이 양조장 1개를 운영하며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 펍에 맥주를 공급하던 작은 브루어리였다. 진주햄에 인수된 후 현대적 설비를 갖춘 양조장을 2개 늘렸고, 청담동에 플래그십 매장을 열어 기존보다 5배 가까운 5000㎘의 생산설비를 확보했다. 카브루는 올해 말 매출이 인수 시점보다 3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박 회장은 “카브루는 수제맥주 회사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양성’의 DNA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수제맥주 회사 중 가장 많은 24종의 상시생산 제품 라인업을 갖고 있고, 지난해 청담동에 R&D센터를 겸하는 소규모 브루펍을 오픈하고 다양한 국내 작물을 활용한 실험적인 맥주를 선보여 호평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마트오더, 영세 수제맥주 업체는 혜택 못 봐 = 전성기에 진입한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온라인 판매’다. 4월 정부는 주류 규제 개선을 위해 온라인에서 주문·결제 후 상품은 매장에서 수령하는 ‘스마트 오더’를 허용했다. 하지만 오프라인 유통 플랫폼을 뚫지 못한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들은 이 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이에 한국수제맥주협회는 실질적인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줄 것을 정부에 지속해서 요청하고 있다.

박 회장은 “스마트 오더 방식의 판매를 허용한 것도 규제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히 의미가 있지만, 몇몇 수제맥주 업체들의 시도 결과 기대한 수준의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며 “제품을 대면으로 수령해야 하기에 픽업 장소에 대한 소비자 접근성 문제가 있고, 또 실행까지 유통단계가 많아져 비용이 높아지고 판매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로켓배송이나 새벽배송처럼 선진적 온라인 거래·배송 시스템을 갖춘 우리나라에서 유독 주류만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일부 ‘지역특산주’의 온라인 판매를 통해 이미 대부분 온라인 상거래 플랫폼들이 주류 판매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만큼 온라인 판매 허용은 언제든 실행 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 판매가 이뤄진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소비자들이 수제맥주를 손쉽게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박 회장은 “소비자들은 전국 각지 양조장에서 지방 특산물이나 독특한 아이디어로 양조한 다양한 맥주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마트나 편의점 입점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소규모 수제맥주 업체들은 남다른 아이디어와 맛있고 품질 좋은 맥주로 승부를 볼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수제맥주도 ‘K 브랜드’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청사진을 내비쳤다. 협회에 따르면 유럽이나 미국 맥주를 흉내 내기 바빴던 국내 수제맥주 수준이 최근 몇 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 최근 세계 수천 개 맥주들이 출품되는 주요 맥주대회에서 수상하는 업체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고, 수출 또한 늘고 있다. 박 회장은 “아직 수제맥주 업체들이 소규모 생산에 그치다 보니 수출 가격 경쟁력을 위한 원가구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국내 수제맥주 산업이 성장할수록 경쟁력 있는 맥주 생산이 가능해지고 한국 고유의 재료를 활용한 맥주를 개발해 한류 문화 콘텐츠들과 접목한다면, ‘K-craft beer’로 향후 수출 전망은 밝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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