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의 노동과 법] 노동조합의 집단이기주의와 사회적 책임

입력 2020-02-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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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전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마스크 품귀현상을 빚는 등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마스크 제조업체에 대해 주52시간제의 예외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였다.

그러자 양대 노총은 ‘근로시간 단축정책을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며,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적절하게 치료할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스크는 바이러스로부터 감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다. 이런 비상시국에 마스크 수급을 위한 연장근로에 반대한다니, 그들은 다른 혹성에 살고 있는 외계인들인지 묻고 싶다.

이와 비슷한 일이 자동차업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발병으로 중국산 부품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현대자동차의 조업 중단은 불가피해졌다. 자동차 부품 중 하나인 ‘와이어링’을 공급하는 중국 공장의 휴업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에 사측은 평균임금의 70%에 해당하는 휴업수당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노동조합은 ‘부품 공급의 차질은 사측이 천재지변에 대비하지 않고 부품 수급망을 다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기존의 임금을 그대로 지불할 것을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46조는 사용자의 귀책 사유로 휴업하는 경우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근로자에게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사측의 이 같은 조치는 적법한 것으로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이처럼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공장 가동을 멈추는 위기에 사태의 책임을 사측에 돌리면서 고통 분담을 거부하는 노동조합의 주장은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노동조합의 이런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현 정권하에서 더욱 노골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도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였던 IBK기업은행장은 노조의 출근 저지에 가로막혀 출근조차 못하다가 29일 만에 첫 출근을 했다. 이 과정에 여당 원내대표까지 중재에 나서면서 금융기관으로서는 최장의 출근 저지 투쟁이 겨우 마무리되었다.

이날 발표된 노사합의문을 보면, 노조추천이사제와 희망퇴직 문제 등 그간 모든 국책은행이 요구해오던 경영 관련 사항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결국 낙하산 인사를 명분으로 실리를 챙겼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현행 노동법은 노조원들의 근로조건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경우에 한하여 집단행동을 허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출근하는 기관장을 볼모로 경영사항까지 관철시키려는 노조의 집단이기주의는 정당성 여부를 떠나 지지받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는 외형적으로는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내적으로는 여러 가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로 인한 소득 불평등과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문제가 심각한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노동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일자리 창출과 성장·분배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대기업 노조의 잦은 파업과 급격한 임금인상에서 보듯이 무리한 요구의 남발과 이기적 행동으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나고, 시민단체보다 영향력과 신뢰도에서 뒤떨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동조합은 더 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며, 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다. 노동조합은 기업 경영의 파트너로서 불필요한 파업과 과도한 임금인상 등을 자제하여 노사 간의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집단이기주의에서 탈피하여 당면한 노동문제의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소비자·시민사회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노동조합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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