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어디갈래] "어떤 미디어로 표현하는지 중요하지 않아"…'게리 힐: 찰나의 흔적'

입력 2019-12-27 06: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비디오 아트 거장 '게리 힐' 개인전…亞 최대 규모

▲관람자(Viewer·1996) (사진제공=이하 수원시립미술관)
▲관람자(Viewer·1996) (사진제공=이하 수원시립미술관)
2층 전시실 한쪽 벽면. 약 13.7m의 검정 벽면에 노동자 17명의 이미지가 실물 크기에 가깝게 비춰진다. 다섯 대의 프로젝터를 통해 나타난 이들은 미세한 표정 변화 같은 무의식적인 움직임을 제외하고는 거의 미동도 없이 서 있다. 그들 사이에서도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다. 각자 홀로 서서 관람객들을 응시한다. 피할 수 없는 시선 속에서 긴장감이 흐른다.

게리 힐의 대표작 ‘관람자’(Viewer·1996)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비디오아티스 게리 힐의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이 내년 3월 8일까지 경기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2019년 국제전 ‘게리 힐: 찰나의 흔적’(Gary Hill: Momentombs) 전이다.

게리 힐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인간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인 신체 그리고 인간이 바라보는 이미지와 인간이 속해 있는 공간의 형태 등을 주제로 다양한 매체 실험을 지속해왔다.

▲구석에 몰린(Cornered·2016)
▲구석에 몰린(Cornered·2016)

초기엔 작가로 활동하다 1970년대 초 소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영상과 텍스트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며 예술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비디오뿐 아니라 다양한 범주의 최신 기술로 작업하며 카르티에 재단의 작품 의뢰를 받았다. 2011년 아티스트 트루스트의 ‘예술 혁신가 상’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 작가를 규정하던 ‘비디오 아티스트’가 아닌 열린 해석이 가능한 ‘언어 예술가’로서의 측면을 소개한다. 특정 매체나 틀에 갇힌 예술가가 아닌 동시대 현대미술의 정신을 대변하는 게리 힐을 조망하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올해 최신작까지 그의 작품을 총망라한다.

게리 힐의 작품에서 이미지와 언어 그리고 소리는 시간에 따라 결합, 분리, 소멸과 탄생을 반복하는 양상에 착안해 만들어졌다. 이미지와 언어가 미끄러지는 ‘찰나’에 다른 이미지와 언어가 짝을 이루며 뒤를 잇는다. 그 ‘찰나’에 소멸된 이미지와 언어들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 어떤 ‘장소’, 이를테면 무덤으로 표현되는 가상의 공간을 점유하며 새로운 의미와 결합하고 확장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준다.

▲손으로 듣는(HanD HearD·1995~1996)
▲손으로 듣는(HanD HearD·1995~1996)

‘잘린 파이프’(Cut Pipe·1992)는 두 개의 알루미늄 파이프가 약 25㎝ 간격으로 바닥에 일렬로 놓여있다. 한 개의 파이프에는 흑백 모니터가 설치됐고 다른 파이프 반대쪽 양 끝에는 스피커가 설치됐다. 이를 통해 영상과 함께 들려오는 말소리는 마치 파이프를 통과해 보이는 스피커로 나오는 느낌을 주고 스피커를 만지고 조작하기 위해 표면을 누르는 손의 영상이 두 파이프 사이의 틈을 건너 스피커 표면에 투사된다.

‘나는 그것이 타자의 빛 안에 있는 이미지임을 믿는다’(1991~1992)는 4인치 흑백 모니터와 렌즈가 설치된 일곱 개 원통형의 튜브들로 구성된다. 한 무더기 책들 위로 천장에 매달린 튜브들이 각각 다른 높이로 내려와 있다. 유일한 광원은 펼쳐진 책장 위로 비치는 이미지다. 이미지들은 크기가 각각 다른 책 크기들에 맞춰져 있으며 두 개의 얼굴, 두 개의 몸통, 두 개의 몸, 입, 손가락, 텍스트, 손들 그리고 의자 하나로 구성된다.

▲학습곡선(Learning Curve·1993)
▲학습곡선(Learning Curve·1993)

비디오가 비추는 텍스트들은 모두 모리스 블랑쇼의 ‘최후의 인간’에서 가져온 발췌문들이다. 중간에 커다란 손들이 의도적으로 천천히 움직이면서 지워내는 동작을 하고 관람객이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소리인 표면을 문지르는 둔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전시 외에도 미디어 아카이브와 작가 인터뷰 영상 및 작가 소개가 담긴 국내외 도서를 비치해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언어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다양한 매체로 풀어내며 작품과 관객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를 탐구한 작가 게리 힐의 40년간의 작품 세계와 현재를 만나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살아남아야 한다…최강야구 시즌3, 월요일 야구 부활 [요즘, 이거]
  • 수영복 입으면 더 잘 뛰나요?…운동복과 상업성의 함수관계 [이슈크래커]
  • “보험료 올라가고 못 받을 것 같아”...국민연금 불신하는 2030 [그래픽뉴스]
  • 단독 출생신고 않고 사라진 부모…영민이는 유령이 됐다 [있지만 없는 무국적 유령아동①]
  • 한국 여권파워, 8년래 최저…11위서 4년 만에 32위로 추락
  • '최강야구 시즌3' 방출 위기 스토브리그…D등급의 운명은?
  • 르세라핌 코첼라 라이브 비난에…사쿠라 “최고의 무대였다는 건 사실”
  • 복수가 복수를 낳았다…이스라엘과 이란은 왜 앙숙이 됐나 [이슈크래커]
  • 오늘의 상승종목

  • 04.16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5,586,000
    • -0.88%
    • 이더리움
    • 4,633,000
    • -2.38%
    • 비트코인 캐시
    • 735,000
    • -7.14%
    • 리플
    • 745
    • -1.59%
    • 솔라나
    • 206,100
    • -3.1%
    • 에이다
    • 690
    • -1.57%
    • 이오스
    • 1,131
    • -2.08%
    • 트론
    • 168
    • -1.18%
    • 스텔라루멘
    • 164
    • +0%
    • 비트코인에스브이
    • 101,400
    • -1.55%
    • 체인링크
    • 20,280
    • -2.27%
    • 샌드박스
    • 658
    • -0.3%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