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하면 위법… 文정부 삼성 개혁 어디로

입력 2018-05-04 09:32 수정 2018-05-0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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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말 청와대 관계자는 대법원에 전화를 걸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국민청원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청원이 23만 명에 이르자 그 내용을 단순히 알리고 전달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파면을 주장하는 국민청원을 전달하는 행위 자체가 판사에게 사실상 압력을 줄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 등의 여러 결정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고 있다. 예전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애매한 상황에서도 전 정권에서 내린 해석을 180도로 뒤집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이 유독 삼성에만 집중되는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만은 없어 보인다. 최순실 사태이후 삼성과 관련된 사안은 애매하면 위법으로 일단 결론 짓고 혹시나 모를 특혜 의혹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논란의 경우다. 금융당국은 방침을 1년 만에 바꿨다. 지난해 초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한국공인회계사회의 감리 결과 회계 처리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된 직후인 지난해 3월 말 시작된 특별감리 끝에 금감원은 이달 1일 분식회계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재계에서는 “정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면 어떻게 기업이 경영을 하겠는가”라고 비판한다.

순환출자 해소와 관련해서도 공정위는 2년 만에 결론을 뒤집었다. 공정위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순환출자 고리와 관련해 삼성SDI가 보유한 옛 삼성물산 주식(404만 주)은 신규 순환출자에 해당하지 않아 매각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정반대 해석을 내놨다. 결국 삼성SDI는 지난달 해당 주식 전량을 팔았다. 금융위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차명계좌 과세와 관련 그동안 줄곧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논란이 이어지자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요청했다. 법제처는 과징금 부과 대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밖에 최근 공정위가 삼성그룹 총수를 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변경한 것은 자의적인 부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본적으로 총수는 경영권 승계를 전제로 하는데, 이것이 없는 상황에서 미전실 해체를 지시했다는 이유 등으로 이재용을 총수로 결정했다. 삼성과 관련한 각종 사안에 대해 이 부회장을 직접 압박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작업환경보고서 공개 여부를 놓고는 고용노동부가 “영업기밀이 아니다”고 주장했고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부 영업기밀이 포함돼 있다”며 엇박자를 냈다. 일단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고용부는 “영업기밀이 있더라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방침이어서 앞으로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요즘 정부는 애매한 상황에서 양쪽 다 논리가 있는 상황이라면, 산업적 발전, 경제 발전 측면보다는 삼성에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는 오해를 받지 않는 쪽으로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올렸지만, 전체 영업이익의 무려 74%가 반도체 사업에서 나왔다. 반도체가 흔들리면 사업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스마트폰 업황은 눈에 띄게 축소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보다 0.4%포인트 줄어든 20.7%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3년(32.3%)의 3분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디스플레이는 2분기 적자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지금이야 반도체 사업이 굳건해 미래 걱정이 없겠다고 하지만, 업황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사업이라 언제까지 호황이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나서야 할 삼성이 국내의 각종 규제 및 불확실성에 시달리며 뒤처진다면, 결국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큰 손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불어 삼성도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근 뒤바뀐 정책으로 삼성이 손해를 본다는 건, 거꾸로 얘기하면 그동안 정책이나 법안 등이 그동안 삼성에 유리한 쪽으로 치우쳤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정경유착에서부터 노조 탄압, 지배구조 개선에 이르기까지 해결해야 할 숱한 과제가 놓여 있다. 자신들만 유독 비판받는 것이 현실을 ‘삼성 때리기’라며 문재인 정권만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이런 일을 자초한 것은 아닌지 통렬하게 반성해야 하고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재판과정에서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 싶다는 말을 누누이 한 것 역시 스스로 삼성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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