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정화’에 고민 깊어지는 갭투자자

입력 2018-03-1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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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안정화’라는 말은 듣기에 참 좋다. 천정부지로 치솟던 집값이 멈추거나 오히려 떨어지면 집 살 엄두도 못 내던 서민에게 기회가 생기니 반기지 않을 수 있을까. 다만 이 ‘안정화’라는 말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집 여러 채 가진 부자들을 걱정하는 게 아니다. 전(前) 정부가 불어넣은 바람을 믿고 갭투자에 나섰던 사람들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경기 부양책을 내놓으며 전세가율이 단기 급등했다. 2015년 7월 처음 70% 선으로 지난해 6월 75.1%까지 올랐다. 비교적 소액을 투자해도 아파트를 구매할 길이 생겼다. 일부 지역은 자기자본 1억 원이면 충분했다. 듣기에 따라서 큰돈이지만 이 정도로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구미가 당길 만했다. 굳이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를 하지 않아도 내 집이 생긴다는 만족감은 높다.

올 들어 서울 전세가율이 60%대로 떨어졌다. 전셋값 안정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 안정화에 갭투자자들은 불안해 하고 있다. 세입자를 새로 구하려면 떨어진 전셋값만큼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경기 침체에 빠진 지방 일부 지역에서는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에 떨어지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깡통전세’까지 발생하고 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뒤 ‘어둠의 투기세력’ 취급받고 있는 갭투자자 중에는 지난 정부가 깔아준 멍석 위에서 내 집 마련 기회를 잡은 평범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집값·전셋값 안정화가 지상과제인 이번 정부는 이들까지 살얼음판 위를 걷게 하고 있다. 인위적인 규제가 쏟아지며 시장은 갭투자자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물론 시장의 리스크를 떠안는 건 무리한 투자를 감행한 갭투자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다만 좀 억울할 것이다. 그들이 희망 있게 보던 시장 상황을 급변시킨 건 그들의 예측밖에 있던 정부의 개입이다. 집값 안정화의 조짐이 나타나면서 발 디딜 곳 없는 갭투자자들은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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