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세상풍경] 우리 입을 달게 한 것들

입력 2017-09-22 10:44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KONICA MINOLTA DIGITAL CAMERA
▲KONICA MINOLTA DIGITAL CAMERA
설탕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완전하게 갈리는 기호품 중에 커피가 있다. 커피는 달게 먹는 사람과 조금 달게 먹는 사람, 그리고 설탕을 아예 안 넣고 쓰게 먹는 사람으로 나뉜다. 나 역시 어릴 때는 단것을 좋아했는데, 어른이 된 다음엔 단것을 점점 피하게 되었다.

어릴 때 대관령 아래 산촌에 살던 시절 배를 곯았던 기억은 크게 없지만 입에 단것은 늘 고프고 그리웠다. 겨울엔 설 무렵 엿을 고지만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런 것이 일절 없었다. 동네 어귀 삼거리 가게에 가면 눈깔사탕을 팔지만 그거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가게엔 사탕이 있어도 우리 주머니엔 사탕을 사 먹을 돈이 없었다. 또 사탕을 사 먹으라고 돈을 줄 부모님도 아니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특별히 모질어서가 아니라 그런 면으로는 어느 집 가릴 것 없이 그랬다. 왜 그랬는지 어른들 모두 군것질을 거짓말만큼이나 나쁘게 여겼다.

그렇다고 산촌의 아이들이 단맛을 아주 포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 방식대로 단맛을 찾았다. 봄이면 우리가 ‘뽐’이라고 부르던 삘기의 새순을 뜯어먹었고, 목화가 꽃을 피워 씨방이 통통해지면 목화 씨방을 뜯어 앞으로 솜이 될 녹색 섬유질을 질겅질겅 씹기도 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조금은 들척지근한 푸른 단맛이 나왔다.

어른들 몰래 한여름 수수밭에 들어가 새파란 수숫대를 꺾어 그 안의 물기 가득한 푸른 수수깡을 질겅질겅 씹기도 했다. 사탕수수뿐 아니라 그냥 수숫대와 옥수숫대에도 그 안에 일정 분량의 당분이 들어 있었다. 푸른 옥수숫대를 꺾어 씹어도 들척지근한 단물이 나왔다.

수숫대를 씹다가?날카로운 수숫대 껍질에 입술을 베일 때도 많았다. 아무리 조심을 해도 혀와 입술 여러 군데에 상처가 나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단맛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쉽지 않았다. 까짓것, 입술에 피 좀 나면 어때. 그동안 굶주렸던 단맛만 본다면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피가 배어 나오는 입술로 아이들은 수수깡 속의 들척지근한 수액을 더욱 힘껏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아대곤 했다. 그런다고 단물이 양껏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강릉 시내의 어느 부잣집 얘기를 할 때 “그 집은 설탕을 아주 포대째로 갖다놓고 먹는다”고 했다. 그 포대가 시멘트 포대만 하다고 했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설탕 포대를 본 적이 없었다. 작은 봉지에 든 설탕만 봤지 설탕이 커다란 포대로도 나온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때까지 내가 알고 있던 포대는 시멘트 포대와 비료 포대, 밀가루 포대 같은 것뿐이었다.

어쩌다 여름날 수박화채를 만들어 먹을 때에도 설탕이 너무 비싸서 사카린으로 만든 당원(糖源)을 썼다. 어릴 때 떡을 꿀에 찍어 먹고는 자랐어도 설탕을 마음껏 찍어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몇몇 설탕 생산국을 제외하곤 세계 각국의 일인당 국민소득과 일인당 설탕 소비량이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걸 중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다. 그 나라가 얼마나 잘사느냐를 설탕 소비량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것 역시 1970년대 초반의 얘기였다.

쌀과 연탄 다음으로 귀한 생필품이어서 물가가 오를 때 물가변동 주요 품목 안에 늘 설탕이 있었다. 그런 설탕이 물가지수 품목에서조차 빠진 지 오래라고 했다. 길거리에 단것은 여전히 범람해도 생활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있는 듯 없는 듯 줄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설탕으로도 이렇게 한 시대의 모습이 흘러간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이투데이 ‘2027 테크 퀘스트’ 10월 개최⋯대한민국 AI의 미래를 묻다
  • 비 안 그치는 일본…추석여행·아시안게임 '비상' [해시태그]
  • ‘돌아온 외인’에 코스피 2.7% 상승 마감⋯SK하이닉스 6%↑
  • 지지율 하락에 고개 숙인 李대통령⋯“더 낮게, 개혁은 흔들림 없이”
  • 오세훈 "李대통령, 부동산 현실 거부⋯머릿속부터 리셋해야"
  • 美 연준 이어 일본은행도 기준금리 인상⋯글로벌 긴축 가속
  • 아이폰18 프로 출시...통신3사, 할인·중고폰 보상 등 고객잡기 경쟁
  • 추석 차례상 비용, 평균 5.1% 상승…폭염 여파로 ‘채소류 급등’ [물가 돋보기]
  • 오늘의 상승종목

  • 09.18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0,887,000
    • +3.71%
    • 이더리움
    • 3,592,000
    • +4.91%
    • 비트코인 캐시
    • 337,300
    • -1.17%
    • 리플
    • 1,934
    • +5.91%
    • 솔라나
    • 152,800
    • +4.8%
    • 에이다
    • 304
    • +3.4%
    • 트론
    • 462
    • -0.22%
    • 스텔라루멘
    • 263
    • +1.94%
    • 비트코인에스브이
    • 23,260
    • +1.35%
    • 체인링크
    • 16,830
    • +3.51%
    • 샌드박스
    • 51.24
    • +3.7%
* 24시간 변동률 기준

Web3 레이더

  • 주목 펀딩
    • 1 Arc $222M
    • 2 Ripple $500M
    • 3 Morpho $175M
    • 4 World OTC $52.5M
  • 인기 프로젝트
    • 1 Arc Infra 인기지수 364
    • 2 Genius DeFi 인기지수 316
    • 3 Stonk 인기지수 311
    • 4 The Standard Reserve DeFi 인기지수 291
  • 토큰 언락 임박
    • HumidiFi $11.7M · 유통량 113% D-81
    • Capricorn $23.3M · 유통량 53% D-34
    • FLock $5.7M · 유통량 41% D-11
    • DAOBase $580K · 유통량 43% D-29
Source fr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