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레깅스의 新패션경제학

입력 2017-07-3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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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부장

타이츠 모양의 신축성 있는 하의, ‘레깅스(leggings)’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거다. 서구 쪽에선 여성들의 일상복이 된 건 물론이고, 올해 초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이 레깅스 입은 소녀 승객의 탑승을 거부해 SNS상에서 논란을 일으켰으니, 몰랐던 사람도 한 번쯤은 ‘레깅스’라는 단어를 검색해봤을 거다.

근데 이 레깅스라는 것이, 이것을 입는 자와 입은 자를 바라보는 자 측의 입장이 서로 엇갈린다.

레깅스 옹호론자들은 “편안한 것으로 말하면 청바지를 능가하고, 멋스럽기로 따져도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주장한다. 반면 레깅스 반대파들은 몸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보는 이의 입장에선 눈을 둘 곳이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음란마귀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비꼰다.

작년 10월 미국 로드아일랜드에 사는 앨런 소렌티노라는 남성은 지역신문에 20세 이상의 여성은 레깅스를 입지 말아야 한다고 투고해 여성들의 반발을 일으켰다. 그의 주장인즉, “어린아이나 젊은 여성이 입으면 사랑스러워 보이지만, 나이 든 성인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입으면 왠지 불온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에 반발한 지역 여성들은 즉각 레깅스 시위대를 결성해 거리 행진을 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레깅스를 둘러싼 논란은 풍기 문란을 이유로 미니스커트 착용을 금기시했던 1960년대 우리나라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1964년 메리 콴트라는 영국 디자이너가 탄생시킨 미니스커트는 패션 디자인의 혁명이었지만, 국내에서는 ‘말세의 징조’라며 경범죄 처벌 대상이 됐다.

그런 한편에서 미니스커트는 경기(景氣)를 진단하는 가늠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성의 스커트 길이에 따라 호경기와 불경기를 진단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경제학과 심리학의 측면에서 말이 엇갈린다.

1928년 컬럼비아경영대학원의 폴 니스트롬 교수는 ‘패션경제학(The Economics of Fashion)’이란 저서에서 불황엔 여성의 스커트 길이가 길어진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기가 호황이던 1960년대에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했고, 오일 쇼크 등으로 불경기였던 1970년대에는 긴 치마가 인기였다고 한다.

반면 심리학자들은 불황기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눈길을 줄 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에 관심을 끌기 위해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많이 입었고, 호황기에는 심적으로 여유로운 남성들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여성들이 긴 치마를 주로 입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패션업계에서는 단순히 유행일 뿐 여성의 치마 길이와 경기는 무관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던 외환위기(外換危機) 때는 미니스커트가 유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레깅스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어쩌면 우리는 레깅스의 유행이 시사하는 바를 놓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재 의류업계에선 레깅스가 업체의 인지도나 매출에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전자상거래 분석회사인 슬라이스 인텔리전스는 얼마 전 온라인몰을 운영하는 10개 업체를 대상으로 청바지와 레깅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패턴을 조사했다. 청바지와 레깅스를 조사 대상으로 한 건 가장 기본적인 아이템이어서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가늠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기본적인 옷을 사서 입었을 때 아주 편안하고 맵시가 좋다면 다른 제품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판단해 매출 증가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슬라이스는 조사 결과 아마존에서 레깅스의 매출 점유율이 가장 컸는데, 이는 다른 의류 매출에도 영향을 줬다고 했다.

슬라이스 조사에서 눈여겨볼 건 레깅스 주문량이 청바지를 능가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가 얼마 전 보도한 ‘100달러짜리 레깅스가 350달러짜리 청바지를 죽였다’는 제목의 기사는 현재 경기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100달러짜리 레깅스를 사면 운동복·잠옷·일상복 등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소비자들이 굳이 외출복으로밖에 활용이 안 되는 찢어진 청바지를 350달러나 주고 사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소비자들의 지갑이 그만큼 얄팍해지고, 소비 성향도 깐깐해졌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은 ‘불경기’라는 것.

레깅스 입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레깅스는 예전에 미니스커트가 그랬던 것처럼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올여름 휴가지에서 레깅스 입은 여성을 본다면 미간을 찌푸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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