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語 달쏭思] 은행·은항(銀行)

입력 2017-05-1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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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이라는 한자는 훈독이 두 가지이다. ‘다닐 행’과 ‘줄(line) 항’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행동(行動)’, ‘행로(行路)’라는 용례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항렬(行列)’, ‘항오(行伍)’가 대표적 용례이다. 유일한(柳一韓) 선생의 이름자에서 ‘柳’와 ‘韓’을 따서 창업한 ‘유한양행(柳韓洋行)’의 ‘行’은 ‘다닐 행’의 의미일까? ‘항렬’의 의미일까? 둘 다 아니다. 이때의 ‘行’은 ‘항’으로 읽어야 하며 ‘동업조합[guild]’과 비슷한 의미이다. ‘양항(洋行)’의 원래 의미는 ‘서양 물건 조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항방제도(行坊制度)’를 실시하여 산업인과 상업인들의 영업 장소를 도로를 경계로 블록(block: 단지團地·구역)으로 나누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 구역에 모여 영업을 하도록 했다. 이런 구역을 ‘방(坊:동네 방)’ 혹은 ‘항(行:거리 항)’이라고 불렀다. 방은 블록 내의 안쪽이고 항은 바깥쪽이다.

방은 시쳇말로 치자면 ‘먹자골목’의 골목에 해당하는 개념이고, 항은 ‘가구점 거리’의 거리에 해당하는 개념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염색업자들이 모여 있는 구역을 ‘염방(染坊)’이라고 불렀고, 각종 철물을 파는 거리를 ‘오금항(五金行)’이라고 불렀다. 현대 중국어에서도 철물점은 ‘우진항(五金行)’이라고 한다.

그리고 은(銀)이 화폐의 가치를 나타내는 단위 역할을 했으므로 금융거리를 ‘은항(銀行)’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은행’이라고 하지 않고 ‘은항’이라고 한다. 중국어 발음으로 ‘인싱’이라고 읽지 않고 ‘인항’이라고 읽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은행은 사실 ‘항’으로 읽어야 할 ‘行’을 ‘행’으로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유한양행의 ‘행’도 마찬가지다. ‘은항’, ‘유한양항’이 바른 발음이다. 그러나, 이미 습관으로 굳어져 버렸으니 따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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