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업계가 일본에 수주 잔량 역전을 허용했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수주 기근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보다 일감이 더 없다는 얘기다.
4일 영국의 조선ㆍ해운 시황 전문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의 수주 잔량(잠정치)은 1991만6852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를 기록했다. 일본의 수주잔량(잠정치)인 2006만4685CGT보다 더 적은 것이다.
연간 확정치가 발표되지 않아 최종 수치는 바뀔 수 있지만, 잠정치로만 따지면 일본이 한국보다 14만7833CGT 더 일감이 넉넉하다. LNG선 1척이 8만CGT임을 고려하면 일본이 1~2척이 선박을 더 수주했다는 얘기다.
한국은 1999년 12월 말 수주잔량에서 일본을 2만1000CGT 앞선 이후 줄곧 수주 잔량에서 우위를 유지했다. 호황이던 2008년 8월에는 한국과 일본의 수주 잔량 격차가 지금의 10배 수준인 3160만CGT까지 벌어진 적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매달 일감이 줄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일본 역시 2015년 12월 말 2555만CGT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들어 수주 잔량이 하락세로 돌아섰으나 한국의 감소폭이 훨씬 커 순위가 뒤집혔다.
현재 국가별 수주 잔량 순위는 중국이 1위를 달리고 있고, 한국과 일본이 2ㆍ3위를 두고 경합을 벌이고 있다. 2015년 기준 전 세계 선박의 92%가 이 세 나라에서 건조되고 있다. 사실상 3국이 생산기지인 셈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의 선전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현재 갖고 있는 수준 잔량은 대부분 올해 안에 인도될 예정이다. 추가적으로 일감을 따오지 않으면 비어있는 선박 건조대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조선업 관계자는 “일본 조선사들은 최근 생산 능력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며 “가와사키 중공업은 조선업의 완전 철수를 고려하고 있고, 미쓰비시중공업은 대형 크루즈 선 건조를 포기하고 중소형 여객선으로 제품 믹스를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런 일본에 수주 잔량 순위 싸움에서 밀렸다는 것은 한국 조선업 현실이 얼마나 암울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며 “글로벌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차이는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