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나라를 바꾸는 언론

입력 2016-12-0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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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한 달 넘게 벌어지고 있는 촛불시위는 재미있는 말과 구호를 양산하고 있다. ‘下野’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나 옷에 각종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도 많다. 그중에서도 ‘나라 바꾸는 가난뱅이’ 식으로 촛불시위 주체의 신분이나 정체성을 강조한 말이 눈길을 끈다. 비정규직, 청소년, 알바생, 계집 등 주로 사회적 약자다. ‘이게 나라냐?’라고 물었으니 나라를 바꾸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주체 선언을 보면서 ‘나라 바꾸는 언론’을 생각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언론 보도로 그 실상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언론의 탐사와 고발이 검찰 수사는 물론 정국을 이끌어가고 있다. ‘나라를 바꾸는 언론’이라고 할 만하다. 정파적 보도와 상업주의 추구로 자율성과 정직성이 위축될 대로 위축된 언론이 이런 보도를 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불통의 리더십과 퇴행적 인사로 비판을 받아왔지만, 무능이나 부정보다 국민을 더 실망시키고 분노하게 만든 것은 언론 보도로 드러난 대통령의 민낯이며 인격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언론이 잘하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탐사보도를 주도해온 언론에도 문제점이나 잘못이 있다. 특종 경쟁과 단독기사(웬 단독이 그리도 많은가?)의 욕심 때문에 언론윤리실천요강이 규정한 관계자의 답변 기회 제공, 피의 사실 검증, 형사피의자의 무죄 추정 원칙을 무시한 보도가 범람한다.

학자들은 언론이 정치 이슈를 다루는 데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사안(합의의 영역)에 대해서는 언론이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 사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와 비판적 여론이 대두되면 언론은 이를 다루기 시작한다(합법적 논쟁의 영역). 이어 그 사안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상태가 되면 언론은 일제히 고민이나 두려움 없이 일방적으로 비판한다. 바로 이탈의 영역이다. 이런 이론을 빌리면 우리 언론은 지금 이탈의 영역에서 더 이탈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영향력이 큰 매체일수록 언론은 모든 영역에 뛰어들어 일정한 작용을 미치려 하고 상황을 주도하고 뉴스를 만들어 내려 하는 경향이 있다. 민원을 잘 해결하고 출입처의 인사에까지 간여해 소속 언론사나 기자 자신의 이익에 부응하는 게 유능한 기자라는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러면 특종은 할지 몰라도 도덕성은 실추되고 언론의 비판감각은 무뎌진다.

언론이 경계할 것은 이탈과 뛰어듦 두 가지 다이다. 객관과 중립의 자세를 견지해야만 언론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에서는 선정성과 선동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온 초등 4학년 손자가 통쾌했다고 말하는 것을 본 할아버지가 “이런 어린이들의 행동까지 미화하는 게 언론의 본령이냐?”고 묻는다. 어떤 독자는 “검찰의 잘못은 언론이 질타하고 감시한다고 치자. 그러면 언론의 잘못은 누가 바로잡느냐?”고 묻는다. 언론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선배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며 기자로 커왔다. “절대 한쪽 말만 듣고 쓰지 마라.”, “현장을 30분 보고 왔으면 30매도 쓸 수 있어야 한다.”, “120을 취재해서 80만 쓰는 게 기사다.” “사건기자 선배는 인생 선배다.”, “달력 속에 기사 있다. 매일 들여다봐라.”, “온몸으로 아이를 배고 낳듯 온몸으로 기사를 배고 낳아야 한다.”

이런 가르침을 그대로 다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잊지는 않고 있다. 요즘 언론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점은 80을 취재하고도 120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클릭 수를 채우고 늘리기 위해 남의 기사나 특종을 변조하는 일이다. 이런 현상이 지나치면 공이 무너진다. 그런 언론행태로는 나라를 바꾸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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