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인문경영] 느끼자, 질문하자, 연대하자

입력 2016-07-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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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박사

지난번 칼럼 ‘어쩌다 인문학’을 통해 필자가 생각하는 나름의 인문학 개념을 정의해 보았다. 칼럼이 나간 후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각기 관련 분야에서의 고뇌에 찬 질문을 보내온 독자들도 꽤 있었다.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인문학 분야의 C 교수, 그리고 공학분야의 L 교수의 질문이었다. C 교수는 “현재 대학 담장 밖에선 인문학 과열 현상을 빚고 있지만, 대학 담장 안에선 ‘문송(문과라서 죄송합니다)’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고사(枯死) 직전”이라며 냉정과 열정의 이상현상, 그리고 인문학도들이 사회에서 제몫을 해내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어떻게 지도해야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반면에 모 공대의 L 교수는 ‘공학도 인문학적 발상을 하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목해야 하는지에 대해 감이 오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말은 다르지만 귀결점은 한 가지다. 현실적으로 인문학이 필요한가, 인문학은 밥이 되는가, 돈이 되는가의 실용성 문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따뜻한 오지랖

국내에서 인문학의 현실적 효용에 불을 붙인 이는 스티브 잡스다. 그가 속도와 양만을 중시하는 기술을 넘어선 인문학, ‘기술과 인문학의 접목’을 강조하면서부터다. 이보다 앞서 경영의 구루 피터 드러커는 “경영이란 전통적 의미의 인문학이다. 지식, 자기 인식, 지혜 그리고 리더십의 원리를 실천하고 적용한다는 점에서 과학이 아니고 자유로운 사고이고, 예술이다”라고 설파한 바 있다. 요컨대 숫자와 기술에 ‘인문학’을 보태야 기술의 혁신도, 조직의 성과도 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단지 ‘동·서양 고전 100선’식의 다이제스트나 문과·이과 구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인문학은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한 오지랖”이라고 정의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혁신 사례’로 잘못 인용해 논란이 된 ‘더 좋은 쥐덫’ 이야기는 기술혁신에서 인문학이 왜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미국 동물트랩사(Animal Trap Co. of America)의 체스터 M 울워스 사장이 내놓은 신제품 쥐덫은 한 번 걸린 쥐는 절대로 놓치지 않고 잡을 수가 있었다. 더 좋은 디자인, 더 좋은 성능과 내구력을 갖추었지만 이 쥐덫은 ‘예상과는 달리’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디자인과 색깔이 예쁜 데다 플라스틱이어서 재사용이 가능한 쥐덫이었지만 죽은 쥐를 처리한 뒤 세척해서 재사용하는 수고가 불편했다. 매번 비싼 쥐덫을 내다버리자니 아까워 소비자는 구형 쥐덫을 사용했다. ‘더 나은’ 기술만 생각하느라 인간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술을 생각하느라 사람을 뒤로하면 혁신은 실패한다.

#인문학의 핵심역량:감(感)·문(問)·협(協)

알파고의 인공지능 시대에 인문학의 인간중심 사고가 한층 더 유용한 이유다. 알파고를 대적하려면, 아니 알파고를 부리는 데 필요한 인간의 가장 큰 핵심 역량은 바로 휴머니티일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헤아리는 따뜻한 오지랖의 인문학형 인재의 3가지 요건은 감(感), 문(問), 협(協)이다.

첫째, 감(感)의 공감 역량이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알’에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란 시구가 있다. 대추알이란 표면현상을 넘어 ‘그 안에 숨겨진 태풍 불고 천둥 친’ 고통까지 읽어내는 것이 공감이다. 무엇을 아파하고 불편해하는지 이면까지 파고들어가 공감하고 반응하고 대응하는 것이 인문학의 본령이다. 중국의 애플이라 불리는 샤오미는 오프라인 대리점이 없다. 그럼에도 미펀(米紛)이라 불리는 열혈 유저 대군을 확보하고 있다. 창업자인 레이쥔 회장은 “샤오미는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성취감을 판다. 그들은 단지 고객을 넘어 기술개발자다”라고까지 말한다. 고객들은 비록 개발기술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어떤 기능을 추가하면 좋을지, 개선해야 할지를 개진하고 그것은 다음 제품 개발에 반영된다. 공감이 참여를 낳고 참여가 소속감을 낳아 공감의 선순환이 계속된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파하는지 읽어내는 공감 역량은 미래형 인재의 필수요건이다.

둘째, 문(問)의 창조 역량이다. 문제를 문제시해 재정의하는 것이 핵심이다. 퓰리처상 수상 시인인 메리 올리버는 “이 우주에서 우리에겐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진다. 사랑하는 능력과 질문하는 능력 그 두 가지 선물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불인 동시에 우리를 태우는 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인문학의 특성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하고, 질문을 주는 데 있다. 최근의 일반인 대상 인문학 강의는 ‘일부 지식 오류’보다 ‘요점 정리의 답’을 대령한 것이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골방에서 골똘히 생각해 봐야 질문신은 ‘강림’하지 않는다. 현장과 부딪혀야 한다. 현장 속으로 뛰어들어야 문제가 보인다. 위의 ‘더 좋은 쥐덫’을 보라. 만일 그 기술자가 사용자의 경험에 주목해 ‘쥐덫의 기본목적은 무엇인가, 소비자가 진정으로 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에 주목했다면 혁신의 실패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정말 최선인가?’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우리가 고객에게 주는 가치는 무엇인가, 문제를 이동하고, 정의를 다시 내려 보는 것, 그것이 질문 역량의 한 예이다. 이 문제가 문제인 것이 맞는가? 문제를 문제시하고, 관점, 초점을 이동해 질문해 보라. 당장 우선 내 생활에서 불편한 점, 불편하게 하는 점이라도 돌아보라. 문제 해결은 알파고에게 맡겨라. 문제 탐구가 인간의 할 일이다.

셋째, 협(協)의 소통 역량이다. 다른 분야, 새로운 사람과 협치하는 역량이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에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란 글귀가 있다. 낯선 사람, 낯선 분야의 사람이 이런 마음으로 힘을 합치면 어마어마한 일도 이룰 수 있다. 목표를 이루는 것도 그렇다. 리더든, 예비 리더든 필요한 것은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새롭고 다른 분야와 사람’과의 협치 소통능력이다. 자신의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표현하고 이해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치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 이제 ‘거시기’라고만 말해도 서로 알아듣는 찰떡궁합 사람들하고만 일해선 살기 힘들다. 맨땅에 헤딩하며 관계를 개척하고 협력할 줄 아는 협치 역량을 길러야 한다. 알파고는 나열할 뿐이지만 인간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상하 동료, 이종업계 사람들과 합종연횡을 하기 위해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핀란드의 창업 사우나, 미국 뉴욕의 테크 미트업(Tech Meetup), 하버드대 의대의 캐털리스트, 스웨덴의 작곡 캠프….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다른 스타일,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 개방형 창조를 하는 시스템이다. 핀란드의 창업 사우나는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미국 뉴욕의 ‘테크 미트업’도 자신과 다른 아이디어를 가진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창조적 혁신을 꾀하는 행사다. 하버드 캐털리스트는 실험실에서 연구된 치료법이 환자의 병상으로 좀 더 신속하게 이동하도록 만들고, 하버드 의과대학 내의 여러 폐쇄적 하위조직들이 이를 위해 협력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이들 모두 다른 분야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창조를 이끌어내고 있다.

결론적으로 인문학은 미래 먹거리의 기반이다. 기술혁신은 알파고가 대행할망정, 인간에 대한 관찰과 공감과 대응, 인간 간의 협업연대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기술을 더 높이, 더 빨리 진보시키는 것은 알파고가 할 수 있지만, 사람이 무엇을 불편해하고 아파하고, 무엇 때문에 흥이 나고, 어떻게 해야 숨과 피가 돌게 할 것인가는 인간만의 경쟁우위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과거의 부장품이 아니라 미래의 비장품이다. 미래로 향해 나가는 전진의 발걸음에 딴지를 거는 짐이나 덤이 아니라, 힘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 지식정보화 시대에 승리의 조건은 눈가리개를 한 채 앞만 보고 달려가고, 남보다 많이 아는 것이었다.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게임의 룰이 달라진다.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가 산업화 시대를 관통해온 성공 구호였다면 미래형 인재의 구호는 ‘느끼자, 질문하자, 연대하자’이다. 인문학의 감-문-협의 3대 요건을 갖추어야 알파고에 꿀리지 않고, 당장 취업-창업을 넘어 평생 밥값을 하는 인재가 될 수 있다. 지난번 칼럼을 읽고 고민을 토로해온 인문대의 C 교수, 공대의 L 교수에 대한 답변을 이것으로 갈음한다. 부디 도움이 되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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