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세기의 대국은 끝났건만

입력 2016-03-22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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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여수엑스포 유치를 위해 동유럽을 순방하던 중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을 둘러본 적이 있다. 한마디로 놀라웠다. 온통 로봇이었다. 특히 용접공정은 수백 대의 로봇만 움직일 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늘 고민하는 문제였지만 현장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제 일자리는 무엇으로 만드나?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여수엑스포 문제는 오히려 작은 티끌같이 느껴졌다.

그로부터 8년, ‘인간대표’와 인공지능의 바둑 대국을 보았다. 인공지능이 육체노동을 넘어 이제 정신노동의 영역에까지 들어오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올 것이 오고 있구나, 짐작하던 일이지만 또 한 번 당혹스럽다. 그 발전의 속도가 그렇다. 실제로 주식투자는 물론 변론자료를 찾는 일이나 신문기사를 작성하는 일까지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 여기에 3D 프린팅 등 제4차 산업혁명의 또 다른 부분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30년 뒤면 전체 경제인구의 5%가 지금의 산업을 모두 돌리게 될 것이라고 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노동의 종언’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나누고, 중기적으로 사람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신산업을 키우고,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이러한 산업을 지속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인적자원을 양성하는 등의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론상 못할 이유가 없다. 일자리 나누기만 해도 그렇다. 우리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100시간 정도이다. 네덜란드나 독일의 1400시간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770시간과도 큰 차이가 난다. 나눌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말이다. 신산업을 육성하고 인력을 양성하는 문제 또한 그렇다.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성공을 향한 열정과 도전정신이 높다. 또 근면하고 성실하며 교육열도 높다. 왜 못하겠는가?

하지만 당분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기업, 노조, 시민사회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를 잘 조정해 주면 좋겠지만 정치권 돌아가는 것을 보나 관료문화를 보나 기대난망이다. 시민사회나 시장이 하는 일을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어느 대학에서의 특강, 취직 걱정이 태산 같은 학생들을 보고 말했다. “경제가 좋아져도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인공지능 등을 활용하는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 말했다. “국가도 정부도 믿지 마라. 어느 당이 집권하고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렇다. 각자도생, 스스로 혁신하고 노력해서 살길을 찾아라.” 한마디 더 했다. “학교도 믿지 마라. 교수가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줄 것이라 기대하지 마라. 여기도 각자도생, 스스로 학교 안팎을 가리지 않고 필요한 지식과 지혜, 그리고 정보를 찾아라.”

그렇다. 대학은 상당 부분 그 역사적 기능을 다 했다. 많은 분야에서 지식은 더 이상 대학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생산된다. 의학과 공학 일부 등 현장과 붙어 있는 일부 전공을 제외하고, 또 기초연구와 산학협력이 잘 이뤄지는 일부 대학 외에는 이미 지식생산 기지로서의 지위를 잃고 있다. 지식의 유통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학 강의실보다는 인터넷 등의 정보통신망을 통해 더 많이 이뤄진다. 좋은 강의를 들으려면 대학에 올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온·라인 공개강좌 무크(MOOC) 등을 찾아야 할 판이다.

그래서 묻고 또 묻는다. 무엇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세상에 왜 이 젊은이들을 대학에 묶어 두어야 하나? 세상이 요구하는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수가 가르치고 싶은 것, 아니 때로는 가르칠 수 있는 것을 가르치는, 공급자 논리가 가득한 대학에 말이다. 이들을 잡아 두는 학위제도를 없애거나, 기업이든 연구소든 학위를 마음대로 주게 하면 안 될까? 강의를 마친 발걸음이 무거웠다. 교수생활 30여 년에 국가운영에도 깊숙이 관여했던 사람이 국가도 학교도 믿지 말고 각자도생하라 하다니…. 바둑의 세기적 대국은 끝났지만 깊어지는 자괴감은 이제 시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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