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인사이드] 프라이머리와 공천

입력 2016-03-1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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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우 뉴욕 주재기자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부담스러운 곳이 식당이다. 메뉴와 선택 사항이 너무 많아 주문하기가 만만치 않다. 종업원이 친절히 설명을 해줘도 알아듣기 어려우니 동반자가 주문하는 것과 똑같이 주문하고 만다. 이럴 때면 우리나라의 골목식당이 그립다. 곱빼기냐 아니냐만 결정하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런 식당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미국 선거는 번거롭고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거의 반 년에 걸쳐 토론과 여론조사와 투표 과정을 거치는데도 인물이 제대로 걸러지지 않고 엉뚱한 후보가 판세를 뒤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막말과 인기 위주의 공략으로 바람몰이하면서 당과 유권자는 분열되고 나라 안팎에서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세계 최강대국의 최대 정당이 유권자들의 잘못된 선택을 방지할 수 있는 사전 대책조차 없다니 의외로 허술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열 명이 넘는 인물들이 경선에 참가했는데도 수준 미달의 후보가 선두를 질주하고 있으니 이렇게 황당할 수가 없다. 정당 지도자와 주요 언론들이 뒤늦게 나섰지만 때는 늦은 듯하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책임질 사람도, 책임지라는 사람도 없다.

선거판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달아오르기만 한다. 별 관심이 없었던 유권자들까지 참여하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투표율을 기록하고 있다. 허무맹랑한 국수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공약에 열광하는 유권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유권자들 간의 기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니 선거 열기와 투표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황당한 공약을 하는 후보와 이에 열광하는 유권자들을 보면서 정말 황당했던 생각이 점점 바뀌고 있다. 월가의 탐욕으로, 중국산 제품의 홍수로, 기업의 해외 이전으로, 밀려오는 불법 이민으로, 그리고 통제되지 않은 총기 사고와 테러로 인해 일자리와 재산을 잃고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미국인들의 상처와 분노를 이해하면서부터다. 드러난 미국인들의 민낯에 짠한 마음까지 생긴다.

최남단 플로리다에서 최북단 알래스카까지 이어지는 프라이머리와 코커스는 각양각색의 미국인들이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게 되고 쌓인 불만도 분출하는 잔치판이다. 황당하게 들렸던 공약에도 공감대가 형성되고 민의가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이 뚜렷이 드러난다. 잘 나가던 후보도 유권자의 눈에서 벗어나면 바로 도태된다. 수준 미달의 후보가 당장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고 그렇게 속 끓이지도 않는다. 수많은 검증을 거치면서 제대로 된 대통령이 결국 선택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도 물 밑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정계와 재계 거물들이 조지아의 개인 소유 섬에 조용히 모였다. 워싱턴의 보수계 연구소인 AEI가 월드포럼을 열면서 회의 내용은 비밀에 부쳤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 미치 맥코넬 상원 원내대표, 선거전략가 칼 로브, 애플의 팀 쿡, 구글의 래리 페이지, 냅스터의 숀 파커,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등과 같은 거물들이 후보를 지명하는 중재전당대회 운영과 드러난 민의를 정강 정책에 담는 방안을 논의했으리라 짐작된다. 이런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업그레이드되어 온 미국 정치의 역사를 미국인들은 잘 알고 있다.

요즘 미국서 접하는 우리 국회의원 선거 소식은 온통 공천 이야기뿐이라 참 비교가 된다. 굳게 약속했던 오픈 프라이머리와 유권자는 사라지고 편 갈라 싸우는 정치인들 모습뿐이다. ‘메뉴는 내가 정할 테니 먹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골목식당의 욕쟁이 할머니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리는 듯하다. 옆 식당에 가도 메뉴 선택권이 없고 새로 생긴 식당도 매 한가지니 예전처럼 대충 먹어야 하는 모양이다.

메뉴를 잘못 고르는 손님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엉뚱한 후보가 판치는 부작용을 원천 차단했다는 공치사까지 들린다. 19대 국회의원은 공천을 거치지 않아 최악인가 보다. 언제쯤 제대로 된 식당에서 마음에 드는 메뉴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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