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인물] 3월 8일 김용식(1910.7.25~1985.3.8)- 감독으로 첫 월드컵 본선 진출 이끈 축구스타

입력 2016-03-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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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대한축구협회가 국제축구연맹(FIFA) ‘100주년 인물’로 추천한 한국 축구 스타는 누구누구였을까. 사람들은 차범근이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떠올리겠지만, 이들을 포함한 6명에 김용식(金容植·1910.7.25~1985.3.8)이라는 선수도 있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른다.

그는 황해도 신천 출신으로 경성부(서울)에서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축구 신동으로 유명했던 그는 경신중 보성전문을 나와 1935년 경성축구단의 멤버로 전일본선수권대회(현 천황배)에서 우승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는 조선 선수로는 유일하게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일본팀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축구팬들은 ‘베를린의 기적’이라고 했다. 당시 그는 베를린으로 떠나는 배의 갑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영국의 축구 서적을 읽고 축구는 체력이 아니라 기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때부터 하루도 쉬지 않는, 이른바 ‘1만 일 훈련’에 매진해 마침내 8강 신화를 이뤘다. 술, 담배도 입에 대지 않았다.

서울축구단ㆍ교통부축구단(현 인천코레일축구단)ㆍ조선전업축구단(현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축구단)ㆍ육군축구단에서 활동하던 그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해 8강까지 진출했다. 42세까지 뛰고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는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대표팀 감독으로 참가해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일궈냈다. 이 대회에서 “다 져도 좋다. 그러나 한 골만 넣자. 그래야 전쟁 때문에 헐벗고 힘든 우리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겠나”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1980년 할렐루야축구단의 창단 감독을 맡았고,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축구 발전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아 축구 명예의 전당에 첫 번째로 헌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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