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압박축구 권하는 심판

입력 2015-11-02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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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람 금융시장부 기자

“미드필드에서 좀 더 압박하세요.”, “3-4-3보단 4-4-2 전법이 좋겠네요.”

만약 이런 이야기가 축구팀 감독이 아니라 심판의 입에서 나오면 축구 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할 게 뻔하다.

그런데 이런 ‘난센스’ 상황이 국내 은행산업과 금융당국에서 벌어졌다.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인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10개 주요 은행장을 불러놓고 기업 여신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통해 충당금을 더 쌓으라고 주문했다. 이른바 ‘옥석 가리기’를 다시 하라는 요청이다.

이 간담회가 아쉬운 이유는 금융당국 수장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그동안 줄곧 은행의 정책이나 경영에 간섭을 줄여 ‘감독’ 역할보다 ‘심판’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세웠기 때문이다.

진웅섭 금감원장이 취임 이후 줄곧 유지해온 ‘조용한 시장의 파수꾼’ 역할과도 어울리지 않는 요청이다.

당시 금감원장과 시중은행장들이 모인 자리에서의 분위기는 좋았다. 하지만 일부 은행장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도 여신심사가 잘 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은행장들은 감독원장의 요청에 아무 액션을 취하지 않을 때 행여나 감독당국에 밉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감독원장의 발언이 단지 한계기업 증가에 은행들의 경영 악화를 우려하는 차원에서 한 말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들에겐 금감원의 이런 요청도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처지다. 이는 감독원장의 발언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필기하는 은행장들의 모습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규정에 없는 지시나 감독을 말하는 그림자 규제를 근절키로 했다. 자칫 금감원장의 이번 발언이 이런 그림자 규제와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전형적인 규제 산업에서 은행장들의 과잉 반응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장들도 기업 여신 재검토 작업을 통해 과도하게 여신심사를 강화하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다.

금감원의 기업 옥석 가리기 결과 요청에 대해 “우리 은행은 지금도 기업 여신 심사가 잘 되고 있어 큰 변화가 없다”고 말하는 은행장이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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