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의 미디어 버스(media-verse)] ‘외신 아전인수’를 걱정하며

입력 2015-07-07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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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지구촌 시대, 외신(外信)은 기자가 막아야 할 최전방이다. 끊임없이 뜨는 속보들을 확인하고 사실 확인과 함께 국내 독자들에게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는 임무가 기자에겐 있다. 2000년대 초반엔 이런 역할, 그러니까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을 교정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고 깊은 정보를 빨리 전달해주는 역할에 프리미엄이 붙어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역할은 곧 축소됐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정보의 바다가 평등해졌기 때문이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외신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기사를 읽으면 된다.

하지만 기자들은? 여전히 정보를 가장 먼저 접하고(때론 여전히 그러하다. 정부 부처가 엠바고를 걸고 사전에 나눠주는 발표 자료가 대표적) 배타적으로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국제부 기자들의 경우 외신에 실린 기사를 보고 간접 취재를 하게 되는데 빨리 본다는 생각에 급급하지 편향(bias)에 대한 주의를 깊게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외신 기사는 해당 기자와 매체의 편향이 반영된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보수 우파를 대표하는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야 파악하기 쉽다. 그런데 매사 비판적인 편이었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그리스 건에 대해선 왜 날선 입장일까 생각해 봐야 한다. ‘가재는 게 편’이란 말을 슬쩍 해 본다.

그리스 국민들은 지난 5일(현지시간) 추가 긴축을 수용할 것인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오히(반대, OXI)’를 택했다. 더 허리띠 졸라매서 빚 갚아야지 무슨 소리냐, 역시 무책임한 그리스인들이라고 쓸 것인가. 옳지 않다.

▲지난 5일(현지시간) 치러진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긴축안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Vox)
역사와 맥락 이해는 그래서 필요하다. 그리스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건 무리한 유로화 채택에 있다. 유럽 공통 통화라지만 결국은 부자나라 수준인 유로화로 통일하려다보니 그리스 통화가치는 엄청나게 부풀려졌고 이에 따른 착시 효과는 사람들을 흥청망청 소비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유로화를 도입한 주인공 루카스 파파디모스 전 총리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선정성은 또 어쩌면 좋을지. 제목만 보면 납량특집이 한창이다. ‘그렉시트(그리스의 EU 탈퇴) 공포’, ‘금융시장 충격 일파만파’, ‘치프라스의 도박’등. 만 40세가 강조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에 대한 묘사는 거의 ‘애송이’ 수준.

더 큰 문제는 그리스 상황을 국내 정치 프레임 대결을 위해 왜곡, 아전인수하는 것이다. 보수 언론은 복지에 퍼주다, 심지어 ‘빚내서 복지에 퍼주다 부도난 그리스’를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우리 정부가 약속했던 복지를 위해선 재정이 모자라다. 그래서 부자나 대기업에게 증세를 해서 복지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를 밟기엔 그리스가 딱 좋은 예인 것이다.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던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가혹한 구조조정을 다 받아들였고 구제금융도 다 갚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그리스 국민은 얼마나 무책임하느냐는 주장이다. 그리스 국민이, 혹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빚을 안 갚겠다고 한 적은 없다. 협상을 다시 하고자 국민투표란 카드를 썼고 그 결과 국민들이 이 정부에 협상력을 실어주었다고 보는 게 맞다. 협상을 위한 수순이란 건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이 물러나겠다고 한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이후 협상을 위해 자신은 물러나겠다고 밝힌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뉴욕타임스)
어느 국내 신문에 게재된 외부인 칼럼에선 그리스 정부가 협상을 망쳐놓고 수습할 수 없게 되자 뒤늦게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나선 건 비정상이라고 지적했는데, 협상은 원래 끝까지 가봐야하는 것이다. “망쳤다”는 표현도 극히 주관적이다. 그리고 일부 재야 경제학자들이 소셜 공간에서 “채권단의 최후 협상안이 얼마나 가혹한지 아느냐”면서 그리스 국민들에게 동정론을 펴는 것 또한 옳지 않다고 본다.

많이 알아야 한다. 외신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고 정치성을 강하게 띤 곳도 있으며 다양한 주장을 날 것 그대로 많이 실어주는 곳도 있다. 그걸 알려면 오래 공부해야 한다. 출입처따라 철새처럼 지내다가 머리 굵어졌다 싶으면 관리자의 길에 접어들고 마는 기자들의 일반적인 사이클을 따르다보면 임기응변은 뛰어날지 몰라도 한 사안을 깊이있고 입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지식을 쌓고 발산하긴 어렵다. 전문기자란 그래서 필요하다. 이슈가 발생하면 깊이있는 기사가 나오는 외신을 보며 한숨쉴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그런 인재들을 기르고 자라게 하는 언론사의 혁신적인 인력 운용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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