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유엔사부지 일대, 13세기부터 외세 침입의 '恨' 서려

입력 2015-04-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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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유엔사부지 일대, 13세기부터 외세 침입의 '恨' 서려

▲용산 미군기지 전경.(사진=연합뉴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자리잡은 용산 유엔사부지. 용산구 이태원동 22-34 일대 5만1753㎡, 근대사와 관련 있는 이곳이 22일 일반상업지로 개발된다.

용산 유엔사부지 일대는 과거에도 교통의 요충지이자, 서울의 길목을 담당하는 나들목 역할을 했다. 이곳은 앞으론 한강, 뒤로는 남산이 자리잡고 있고 서울의 중심부인 경복궁까지도 불과 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이곳은 한반도를 침략한 외세의 병참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기록엔 13세기 고려 말 한반도를 침입한 몽고군이 당시 이 지역을 병참기지로 활용했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임진왜란 때는 평양전투에서 패한 왜군 고니시 병력이 원효로 4가에 가토 병력이 청파동 일대에 각각 주둔했다. '이태원(異胎圓)'이란 지명엔 여러 설이 존재하지만, 왜군이 당시 이 지역에 있었던 절 운종사에서 비구니들에게 성적 폭력을 가했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189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병력 3000명이 주둔한 데 이어, 러ㆍ일전쟁을 앞둔 1904년 일본은 용산 일대에 수만명의 일본군이 주둔할 수 있는 병참기지를 지었다.

당시 일본은 한일의정서를 내세워 용산지역의 부지 300만평을 헐값에 강제수용했다가 이 가운데 115만평만 군용지로 사용했다. 조선을 집어삼킨 일본은 이후 이곳에 조선주둔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관저, 20사단 사령부를 설치하고 2만명의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만주 침공의 후방기지로 삼았다.

광복 후엔 미7사단 병력이 일본군의 병영을 접수해 지금의 주한미군사령부로 발전했다. 이때 유엔사부지도 조성됐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용산기지는 지역민원과 시민들과의 마찰 등으로 이전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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