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 박철순이 남긴 두 얼굴의 추억 [오상민의 스포츠 인물사]

입력 2014-10-29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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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조’ 박철순은 우리에게 두 가지 얼굴을 남긴 채 그라운드를 떠났다. (뉴시스)

타율 0.412(1982년 백인천), 시즌 30승(1983년 장명부), 평균자책점 0.78(1993년 선동열). 한국야구가 추억하는 불멸의 기록들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박철순(58ㆍ당시 OB 베어스)의 시즌 22연승이다.

박철순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24승 4패(승률 0.857) 7세이브 1.84의 평균자책점을 남겼다. 국내 프로야구 첫 20승 투수이자 투수 부문 3관왕을 거머쥐며 시즌 MVP 영광까지 안았다.

한국 프로야구는 박철순의 원년 20승을 시작으로 올해 앤디 밴 헤켄(35ㆍ넥센ㆍ20승)까지 12명(15회)의 20승 투수를 배출했다. 33년 동안 12명만이 20승 고지를 밟을 수 있었다.

박철순의 원년도 활약은 대단했다. 국내 프로야구 출범 전 미국 프로야구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마이너리그 더블A 엘파소 디아블로스에서 활약한 박철순은 당시 국내에는 생소했던 너클볼로 타자를 요리, 평범했던 OB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사실 OB 베어스는 원년 6팀 중 우승 전력에서 제외됐다. 반면 투타에서 막강 화력을 갖춘 삼성은 우승 후보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손꼽혔다. 하지만 야구는 투수놀음이었다. 박철순을 보유한 OB는 삼성 라이온즈, MBC 청룡 등 막강 화력의 우승후보를 누르고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불사조’라는 닉네임은 정규 시즌 맹활약으로 만들어진 별명이 아니다. 박철순은 후기리그 최종전(삼성)에 등판해 8회 오대석(54)의 희생번트 타구를 처리하다 허리 부상을 당하며 팀 패배를 지켜봤다. OB는 이날 패배로 후기리그 우승을 삼성에게 넘겨줬다.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은 평범했던 OB를 우승팀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지나친 혹사는 짧은 전성기라는 어두운 이면을 드러냈다. (뉴시스)

결국 원년 한국시리즈는 OB와 삼성의 대결로 압축됐다. 그러나 허리 부상을 당한 박철은 1·2차전에 등판하지 못했고, OB는 1·2차전을 삼성에게 내주며 궁지에 몰렸다.

병원에서 1·2차전 패배를 지켜본 박철순은 3차전 마운드에 올라 팀에 첫 승리를 안겼고, 4차전에서는 팀이 앞선 상황에서 구원 등판해 두 번째 승리를 지켰다. 박철순이 등판하지 않은 5차전에서 승리한 OB는 박철순을 6차전 선발로 내세워 완투승을 거두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당시 박철순은 마운드에서 죽을 생각으로 올랐다. 허리가 부러지더라도 던질 생각이었단다. 그의 몸을 아끼지 않는 투혼이 OB 베어스를 영원한 원년 챔피언으로 남게 했다. 그래서 그를 불사조라 부른다. 박철순이 한국 프로야구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박철순은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독한 혹사로 인한 짧은 전성기는 한국 프로야구의 씁쓸한 이면이다. 팀당 80게임에 불과했던 원년 24승(4패) 7세이브라는 기록은 지독한 혹사를 입증한다. 2게임에 한 번은 마운드에 올랐다는 결론이다.

박철순의 지독한 혹사는 허리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이어졌다. 결국 박철순은 원년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팬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지워졌다.

투수놀음은 원년 박철순에서 고(故) 장명부(당시 삼미 슈퍼스타즈), 최동원(당시 롯데 자이언츠)로 이어졌다. 한 명의 슈퍼스타가 하위 전력을 우승 전력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수많은 유망주가 투수놀음의 희생양이 됐다. 하지만 몸을 사리지 않았던 그들의 투혼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프로야구가 존재한다. 그 중심에는 박철순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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