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cine 해부학] 김명민의 명품 연기 하지만 익숙한 감동

입력 2012-01-1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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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페이스 메이커'

영화 ‘페이스 메이커’를 말하기 전 제목의 사전적 의미를 먼저 알아보자. ‘페이스’(pace)는 ‘걸음’ ‘보폭’ 또는 ‘속도’다. 그리고 ‘메이커’(maker)는 ‘~을 만드는 사람’ 정도. 즉 ‘걸음이나 속도를 만드는 사람’이 ‘페이스 메이커’다. 이 개념은 운동 종목 중 마라톤에서 유일하게 적용된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우승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이 ‘페이스 메이커’다.

존재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그런 존재의 얘기가 이 영화에는 담겨 있다. 필연적으로 동정과 연민 그리고 희망 등의 감정을 부추길 것이다. 때문에 페이스 메이커인 한 인간의 고통과 고난, 역경의 드라마를 감동의 도가니로 장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 문제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또는 기존의 그것과 어떤 식으로 차별화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상업 영화이기에 전형성의 공식을 따라간다면 곧 자멸이다.

그럼 ‘페이스 메이커’의 선택과 결과는. 앞과 뒤 모두 ‘절반의 성공’ 수준이다. 우선 선택을 알아보면, 1등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2등의 존재에 포커스를 맞춘 스토리는 분명 흥미롭다. 특히 스포츠 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1등이 아니면 철저히 외면 받는 스포츠 세계의 냉정한 현실에 대한 일침과 주인공을 통한 희망적 메시지로 마무리 된다면 가슴을 데울 스토리가 아닐까. 그 주인공이 ‘몰입 연기의 1인자’ 김명민이라면 더 할 나위 없다. 조연으로 대한민국 영화계의 또 다른 이름 안성기, 신예 고아라, 명품 조연 조희봉까지 더한다. 말이 필요 없는 조합이다. 그런데도 절반의 성공이다. 잃어버린 절반을 알아보자.

우선 과정을 풀어내는 방식에 있다. ‘페이스 메이커’는 보는 시각에 따라선 스포츠 영화 또는 좀 더 세밀히 나누면 캐릭터 영화다. 두 분류의 점접은 인물이 어떤 식으로 극 전체를 끌어가느냐에 있다. 이 부분을 중점으로 보면 ‘페이스 메이커’는 기시감을 지울 수 없다. 이미 본 듯한 느낌이 너무 강하단 말이다.

영화는 주인공 주만호(김명민)의 인간 승리가 주목적이다. 결승점의 인간 승리를 위해선 출발선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 한다. 아마 그곳엔 ‘불행한 환경’이란 놈이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왜 그림자 즉 페이스 메이커로서 살아가야 하는지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 이유에 대한 해답도 필요하다. 바로 가족이다. 영화에선 해답을 동생에 대한 무조건적 헌신으로 그렸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그림자도 영화에는 없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동생과 형의 반목도 필요하다. 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주만호는 그 동생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마라토너로서도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반쪽자리 선수’ 취급을 받는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동생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한 없이 착하고 순한 형을 아둔함으로만 보기 때문이다.

종합하면 이렇다. 주만호는 철저한 실패자이며 루저(loser)다. 그래야만 한다.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다. 인간승리 드라마의 공감대를 얻기 위해선 관객들의 동정을 얻어야 한다. 얻기 위한 방법이 바로 앞서 설명한 캐릭터 설정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굳이 특별한 스토리 전개는 필요가 없다. 주인공 주만호의 발걸음과 대사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그에게 쏟는 동정표에 관객들이 반응하느냐 마느냐 만이 중요할 뿐이다. 나아가 이 모든 과정의 변화가 스포츠 영화의 테두리에서 벌어진다면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스포츠 영화는 태생적으로 감동을 위한 존재다. 스토리적 감동을 위해 캐릭터의 설정에까지 감동을 입힌다면 감정을 차고 넘치게 된다.

단점은 또 있다. 스포츠 영화로서 최대 무기인 역동성을 살리지 못한 점이다. 기존 성공한 스포츠 영화의 경우 빠른 화면과 고유의 종목에서만 들을 수 있는 ‘파열음’을 통해 생동감을 살리는 양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페이스 메이커’는 오직 인물간의 관계와 주인공의 내면 변화에만 집중한다. 화면 구도 역시 스포츠 영화로서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하다. 양념으로 사용한 부분은 공교롭게도 ‘얼짱’ 장대높이뛰기 선수 유지원(고아라)과의 희미한 로맨스 정도.

하지만 이 모든 절반의 단점에도 나머지 절반의 성공을 말할 수 있는 점은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연기 본좌’ 혹은 ‘메소드 연기의 1인자’란 호칭이 아깝지 않은 김명민은 주만호로 환생한 듯 과잉 감정을 배체한 채 누르는 듯한 내면 연기로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영화 전체에 힘을 싣는다. 나름의 캐릭터 설정을 위해 인공치아까지 낀 채 하루 20km씩을 달린 그는 영화 전체가 강요하는 감동 수위를 조절하는 탁월함으로 ‘역시’란 찬사를 이끌어 낸다. 특히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에선 멍한 듯 초점을 잃은 채 앉아 있는 모습으로 ‘얼굴이 아닌 몸 전체가 연기 그 자체’임을 증명한다.

안성기 역시 냉철함을 유지한 채 극중 주만호의 감정선의 진폭을 조율하는 지휘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며, 고아라, 조희봉, 최재웅 등 연기도 각각의 분야에서 제몫을 다했다.

배우들의 연기, 또는 소재의 생경함, 그리고 장르적 재미 등 세 가지 관점에서 나눠 본다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만한 영화가 ‘페이스 메이커’다. 오는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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