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파란빛 조명’ 쓰면 안되는 까닭

입력 2023-06-27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세상일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주위를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과학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로, 2014년 노벨물리학상 업적인 청색 LED 발명의 영향도 그런 예다.

꼭 30년 전인 1993년 일본 니치아화학공업의 석사 연구원 나카무라 슈지는 청색LED 개발에 성공했다. 1988년 연구를 시작한 나카무라는 이듬해 바뀐 경영진이 가능성 없는 연구를 중단하라고 지시했지만 무시한 채 회의에도 불참하고 주말도 없이 연구에 매진해 마침내 질화갈륨(GaN) 소재의 고휘도 청색LED를 만들었다.

적색LED와 녹색LED는 오래 전 개발됐지만 백색광을 구현하려면 청색LED가 있어야 하므로 엄청난 발명이다.

전기를 빛으로 바꾸는 반도체인 LED는 백열등과 형광등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월등히 높고 수명이 긴 데다 유독 물질 배출도 적다. 청색LED 발명으로 저에너지 친환경 조명의 시대는 시간문제(제조 단가 경쟁력 확보)가 됐다. 법도 이런 변화를 도와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나라가 백열등 제조를 금지해 LED 조명의 보급을 도왔다.

그런데 LED 조명이 주류가 된 지금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LED로 바꾸며 전기를 아끼는 대신 조명을 늘려 밤을 더 밝히고 있다. 주세가 내려가도 생활비에서 술값이 주는 대신 술을 더 마시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깨알 만한 크기로도 빛을 낼 수 있어 조명의 응용범위가 크게 는 것도 한 요인이다. 그 결과 야간조명의 폐해인 빛공해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청색LED, 에너지절감 효과 크지만…

주간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16일자에서 빛공해를 특집으로 다루며 여러 편의 논문을 실었다. 빛공해를 정확히 측정하고 추적 관찰하는 장치 개발 현황부터 동식물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사람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을 분석하고 있는데 다들 심각하다.

먼저 빛공해 측정 결과를 보면 오늘날 지구촌 밤은 매년 2%씩 더 밝아지고 있다. 특히 사람들이 밀집한 지역은 무려 11%씩 밝기가 늘고 있다. 백열등이나 형광등 같은 기존 조명을 LED 조명으로 바꾼 결과다.

빛공해가 생물의 생리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은데, 특히 야행성 동물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박쥐는 빛공해로 굴을 나오는 시간이 늦어져 먹이활동이 떨어지고 개체 수와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다. 곤충 역시 인공조명 주위를 맴돌다 에너지를 소진해 죽는 등 큰 타격을 받고 있다. 그 결과 지구촌의 곤충 생물량이 매년 2.5%씩 줄어든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밤은 달빛이 가장 강력한 야간조명이었고 생물은 이에 적응해 진화했다(A). 반면 오늘날은 각종 인공조명으로 빛공해가 생겨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B). 이대로 방치하면 밤이 점점 더 밝아져 생태계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다(C). 미래에 빛공해를 줄이려면 파란빛 억제와 차광 장치 부착 등 야간조명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D). 사진출처 ‘사이언스’
▲산업혁명 이전의 밤은 달빛이 가장 강력한 야간조명이었고 생물은 이에 적응해 진화했다(A). 반면 오늘날은 각종 인공조명으로 빛공해가 생겨 생태계가 교란되고 있다(B). 이대로 방치하면 밤이 점점 더 밝아져 생태계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다(C). 미래에 빛공해를 줄이려면 파란빛 억제와 차광 장치 부착 등 야간조명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D). 사진출처 ‘사이언스’

야간 ‘빛공해’로 생태계 교란 우려돼

사람 역시 빛공해로 수면장애를 비롯해 각종 대사질환과 암 발생 위험성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다른 생물들과는 달리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 크게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빛공해는 밝기도 문제지만 빛의 조성이 더 큰 문제다. 인공조명에 섞여 있는 짧은 파장의 빛, 즉 청색광이 빛공해 부작용의 주역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사람을 포함해 많은 생물의 생리 체계가 빛 전체가 아니라 그 가운데 파란빛 파장을 빛의 존재 유무를 판단하는 신호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파란빛은 수면호르몬이라고 부르는 멜라토닌의 합성을 억제해 잠드는 걸 방해한다. 저녁에는 파란빛 파장이 없는 조명을 써야 하는 이유다. 곤충 역시 파란빛 영역이 없는 조명에는 교란되지 않는다.

차도의 가로등처럼 안전을 위해 밝은 빛이 필요한 경우를 빼면 파란빛이 포함된 백색광을 야간조명으로 쓰면 안 되는 이유다. LED 조명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청색LED 발명이 에너지 절감이라는 기대 효과와는 달리 빛공해로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지구촌 야간조명 지도를 보면 북한이 캄캄해 우리나라가 마치 섬처럼 보인다. 전등을 켤 전기도 없는 북한 처지가 딱하지만 이게 인간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능력이 없어 못 하기는 쉬워도 능력이 있는데 안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빛공해 해결은 각자의 자제력에 기댈 게 아니라 촘촘한 법적 규제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충전 불편한 전기차…그래도 10명 중 7명 "재구매한다" [데이터클립]
  • [종합] 나스닥, 엔비디아 질주에 사상 첫 1만7000선 돌파…다우 0.55%↓
  • "'최강야구'도 이걸로 봐요"…숏폼의 인기, 영원할까? [이슈크래커]
  • 나스닥 고공행진에도 웃지 못한 비트코인…밈코인은 게임스탑 질주에 '나 홀로 상승' [Bit코인]
  • '대남전단 식별' 재난문자 발송…한밤중 대피 문의 속출
  • ‘사람약’ 히트 브랜드 반려동물약으로…‘댕루사·댕사돌’ 눈길
  • '기후동행카드' 150만장 팔렸는데..."가격 산정 근거 마련하라"
  • 신식 선수핑 기지?…공개된 푸바오 방사장 '충격'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5,000,000
    • +1.11%
    • 이더리움
    • 5,330,000
    • +0.19%
    • 비트코인 캐시
    • 654,500
    • +0.93%
    • 리플
    • 733
    • +0.69%
    • 솔라나
    • 238,400
    • +3.47%
    • 에이다
    • 639
    • +0.47%
    • 이오스
    • 1,130
    • +0.36%
    • 트론
    • 154
    • +0%
    • 스텔라루멘
    • 150
    • +0%
    • 비트코인에스브이
    • 87,450
    • +1.63%
    • 체인링크
    • 25,420
    • +1.64%
    • 샌드박스
    • 627
    • +1.29%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