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위기'는 에르도안의 자업자득

입력 2018-08-14 00:00 수정 2018-08-14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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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터키 트라브존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날 금리 인상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트라브존/로이터연합뉴스
▲12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터키 트라브존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이날 금리 인상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트라브존/로이터연합뉴스

“달러·유로·금을 팔고 리라를 사세요. 우리 통화를 지킵시다!”

2016년 12월 터키 보수당 심장부인 콘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수많은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애국심을 자극하며 폭락하는 리라 부양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지지자들은 기꺼이 그렇게 했다. 콘야 시장은 500달러어치 이상을 판 공무원에게 일주일간 휴가를 주는가 하면 양탄자 매장 주인은 2000달러 이상을 환전한 고객에게 무료로 양탄자를 나눠줬고, 외과의사는 환전 영수증을 보여준 환자에게 무료 승마권을 제공했다. 일주일 만에 전국에서 4억7000만 달러(약 5330억 원)어치 이상을 리라로 환전했다.

그러나 에르도안의 말에 따랐던 지지자들은 땅을 쳤다. 2016년 7월 15일 일어난 쿠데타가 미수 사건을 계기로 비상사태가 선포된 이후 리라 가치 하락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라의 붕괴는 인플레이션율을 두 자리로 끌어올리면서 터키 서민들을 궁핍으로 몰아넣었다. 살인적인 물가에 소비가 침체되면서 터키 기업들은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이상인 3000억 달러에 이르는 외채에 신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터키 최대 규모의 기업 중 일부는 총 200억 달러에 달하는 대출 구조 조정을 시도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투자자들의 신뢰도 저하를 이유로 지난 6월 터키 17개 은행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두 배로 올리기로 한 후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자 2년 전과 똑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베개 밑에 둔 유로·달러·금을 은행에 가서 리라로 바꿔라” 에르도안 대통령의 목소리는 전보다 더 다급해졌다. 심지어 그는 “터키는 경제 전쟁에 직면했. 전쟁을 시작한 나라들에게 대응해야 한다. 우리에 대한 경제 공격은 우리에 대한 쿠데타 시도와 같다”고 했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전의를 불태우게끔 하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2년 전 에르도안의 말에 넘어가 리라를 샀다가 낭패를 본 지지자들이 이번에도 순순히 따르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하루에만 리라는 달러에 대해 20% 가까이 빠졌고, 올들어서만 66%나 곤두박질쳤다. 이는 에르도안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성장률로만 보면 터키 경제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1분기 GDP는 전년 대비 7.4% 증가해 2017년 전체와 비슷한 수준을 나타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수년 동안 정부가 주도한 신용 폭탄에 경제가 곪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간 경상수지 적자는 4월에 54억 달러로(연율 환산=GDP의 6% 이상) 증가했고, 외국인직접투자는 2015년 이후 꾸준히 감소했다는 이유에서다.

▲SOURCE=ECONOMIST
▲SOURCE=ECONOMIST

전문가들은 현재 터키를 위기로 내몬 이유를 3가지로 꼽고 있다. 원인도 해법도 모두 에르도안의 리더십 문제로 귀결된다.

우선, 에르도안이 금리인상에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보통, 통화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가 상승한다. 이 경우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해 통화 가치와 물가를 안정시키는 게 맞다. 터키 경제는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와 인플레 압력에 직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에 부정적인 에르도안의 눈치를 보느라 찔끔찔끔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상황이 좋지 않다. 시장에서는 터키 인플레율이 16%에 육박하고 있어 기준금리를 현재 17.75%에서 더 올려야 한다고 보고 있지만 에르도안이 “금리 인상이 인플레를 조장한다”는 해괴한 주장을 펴고 있다. 그는 리라가 12일 한때 달러당 7.2리라로 최저치를 경신한 와중에도 “정치적 음모에 절대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한 금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금리인상에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지나치게 막강한 권력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7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공화국 수립 이래 유지된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중심제, 특히 대통령의 권한이 유독 강력한 정부 형태를 가리키는 ‘제왕적 대통령제’로 전환, ‘21세기 술탄’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취임사에서 말로는 “국민의 종이 되겠다”고 했지만 정작, 정치 신예인 사위 베라트 알바이라크를 경제 정책의 사령탑인 재무장관 자리에 앉히는가 하면 중앙은행에 대한 통제권을 수년 내에 행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등 대통령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중앙은행은 정부로부터 독립돼 적절한 정책금리 인상 여부 등을 판단한다. 그러나 터키의 경우 에르도안이 막강한 권력을 갖고 중앙은행의 정책결정까지 좌지우지하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시장에서는 그의 독재가 자금의 해외 유출과 외국인직접투자 감소를 초래한다고 보고 있다. 싱크탱크 비탐의 세이페틴 거셀 소장은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에 “터키 경제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 시스템과 통화 정책의 기능에 대한 자신감 상실”이라고 지적했다.

세 번째는 미국과의 대립이 꼽힌다. 2016년 7월 터키에서 쿠데타 미수 사건이 일어났다. 터키 정부는 에게해 연안에서 20년 가까이 교회를 운영해온 미국인 앤드루 크레이그 브랜슨 목사가 쿠데타에 관련됐다고 보고 2016년 10월부터 그를 감금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터키 측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며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다 미국이 지난 1일 인권 침해를 이유로 터키 각료 2명에 대해 경제 제재를 부과, 양국이 최근 미국에서 협상에 나섰지만 이 마저 결렬되면서 미국의 새로운 제재 조치 발동으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터키는 시리아 정책을 놓고 미국과 자주 대립하고 있고, 미군이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공습 시 터키 남부 인지를릭 공군 기지를 이용하는 것도 못마땅해하고 있다. 양국은 또 재작년 쿠데타 시도의 배후로 지목된 재미학자 펫훌라흐 귈렌의 송환을 둘러싸고도 대립하고 있다. 지난해 에르도안이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경호원들이 쿠르드족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과격하게 저지하는 바람에 경호원 15명이 미국 검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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