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염라대왕이 전한 삶의 진리

입력 2018-01-15 10:00 수정 2018-01-15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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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선 정책사회부 기자

새해 가장 많은 관객이 찾은 <신과 함께>는 주인공의 죽음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이승에서 지은 죄를 저승에서 재판받는 설정으로 재판을 통과한 사람만이 환생할 수 있다. 주인공의 마지막 재판을 맡은 염라대왕은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이 있고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중 일부만이 용기를 내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또 그 중 정말 극소수가 진심으로 용서를 한다”

누구나 해를 거듭하며 자기만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그 세계 속에서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다 보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건네는 일이 쉽지 않다. 수그려야 할 때 수그릴 줄 아는 것이 어른의 자세라고 배웠는데 어른 되기 쉽지 않다는 걸 새삼 느낀다. 사과를 건네도, 진심으로 용서받는 것은 더욱 어렵다.

법조 출입 기자로 일하면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러 온 사람들을 대할 때가 있다. “혐의를 인정하십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다수는 묵묵부답이고 일부는 적극적으로 혐의를 부인한다. 질문이 불쾌하다는 듯 극단적인 말을 써가며 화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재판에 넘겨져 실형을 받는 걸 보면 “그때 그러지나 말지” 싶은 생각이 든다. 사과를 건넬 수도 용서를 받을 수도 없게 된 것만 같아서다.

법망을 피해가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민의 관심과 미움 속에 구속됐다. 그가 어떤 죗값을 치르게 될지 두고 보자는 심리가 생긴 건 그가 지은 죄뿐 아니라 그가 보인 태도도 한몫했다고 본다. 처음 검찰 조사를 받으러 왔을 때 우 전 수석은 레이저 눈빛을 쏘며 당당한 모습을 보여 공분을 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이 불거진 후 대국민 담화를 열고 “이러려고 대통령 됐나 자괴감 든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사심 없이 국정을 운영했다던 그는 36억 5000만 원의 국정원 자금을 상납받은 혐의로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이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면 어땠을까. 법의 판단에 따라 죗값을 치르는 것만으로 용서를 받을 순 없을 것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다. 염라대왕은 잘못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한 주인공에게 환생을 허락했다. 용기 내어 사과할 줄 아는 것이 운명을 결정한다고, 영화는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법조 기자로서 공감하는 삶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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